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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럴 바엔 철거” 폐교 졸업생의 한탄…지원금으로 ‘해외여행’도[저출생 학교 통폐합 전쟁]
통폐합 뒤 7년째 방치 북내초 주암분교
주민들 “뭐라도 좋으니 사람 오갔으면”
전국 미활용 폐교 부지 3681억원
수십억대 통폐합 지원금도 ‘낭비’ 횡행

편집자주: 코로나19가 강타한 2020년, 출생아수가 20만명대로 떨어졌다. 1970년대 한해 100만명씩 태어나던 것과 비교하면 출생아가 3분의1 수준이다. ‘국가 멸종’ 급 저출생 영향은 비수도권·지역 학교에 직격탄이 됐다. 전국에서 폐학교들이 속출했다. 자구책인 학교간 통폐합은 이해관계가 달라 논의가 쉽지 않다. 인구 감소는 현실이다. 하지만 통폐합이 인구 감소를 더 가속화하는 현실은 막아야 한다. 전국 통폐합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제도적 보완점을 살펴봤다.

2017년 폐교한 경기 여주 북내초 주암분교장 부지 앞 운동장이 인근 군부대 훈련으로 진흙 상태가 되어 있다. 박혜원 기자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문 닫은 학교 앞 지나가면, 다 낡아서 그냥 보기 싫어요. 이렇게 놔둘 거면 그냥 철거나 했으면 좋겠는데..." 지난 16일, 7년 전 폐교한 경기 여주 북내초 주암분교장 부지 앞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이 학교 졸업생 원덕식 씨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주암분교는 현재 교육지원청 등 기관의 기록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날 찾은 학교는 문이 닫혀 있었다. 유리문 안쪽으론 치우다 만 책상이, 문앞에는 오래된 교과서 두 권이 떨어진 채 방치돼 있었다.

통폐합 뒤 7년간 방치 주암분교
2017년 폐교한 경기 여주 북내초 주암분교장 부지. 박혜원 기자
경기 여주 북내초 주암분교장 부지 앞에 교과서가 버려져 있다. 박혜원 기자

폐교 후 주암분교 졸업생들은 종종 운동장에 모여 축구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마저 재작년을 마지막으로 시들해졌다. 운동장엔 축구 골대와 철봉 등 운동 기구들만 남았다. 운동장 바닥은 인근 군부대가 훈련장으로 사용하면서 곳곳이 패였다. 비가 온 뒤 운동장은 진흙탕이 됐다.

주암분교는 한때 재학생이 600여명에 달했으나 인구가 점차 줄어 1990년대 주암초에서 북내초 주암분교로 전환됐다. 이후 북내초와 통합됐고 2017년엔 문을 닫았다. 이후 5년이 지나도록 활용처를 찾지 못했다. 2년전 인근 도서관 리모델링 덕에 잠시 임시 도서관으로 잠시 쓰였던 것이 전부다.

북내면 주민이자 주암분교 졸업생인 정옥자(78)씨는 학교 안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정 씨는 “학교가 문을 닫은 뒤로 동네가 너무 적막해졌다”며 “건물이라도 활용이 좀 됐으면 좋겠는데, 주민들끼리 만나면 카페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등 상의를 매일 하곤 한다”고 했다.

북내면 이장 박현철 씨는 80년대에 주암분교를 졸업해 이 학교 역사를 모두 지켜봤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크다. 지난해 여주시 측에서 주민들에 활용 방안을 물었으나 아직 진전은 없다. 박씨는 “주민들은 박물관이나 도서관, 편의시설 등 뭐든 유동인구를 좀 늘릴 수 있도록 활용하는 방안을 원하고 있다”며 “학교 뒤쪽으로 가보면 산에서 칡넝쿨이 잔뜩 넘어와 스산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미활용 폐교 3681억원…“사람 없어 폐교됐는데, 임대 되겠나”
북내초 주암분교 폐교 부지 앞 상가들이 비어있다. 박혜원 기자

전국적인 학교 통폐합은 더 이상 막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통폐합이 지역에 미치는 충격이라도 최소화하는 방안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주암분교 사례처럼 학교 통폐합은 지역 소멸을 더 가속한다. 교육청에선 폐교 부지 활용처를 찾지 못해 난감해 하는 일이 흔하다. 통폐합된 학교를 위한 수십억대 지원금 역시 학교들은 마땅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폐교 부지는 10곳 중 1곳 꼴로 방치 상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교육청이 보유한 폐교학교 부지 3922곳 중 358곳이 ‘미활용’ 상태다. 지역별로는 전남(83곳), 경남(75곳), 강원(55곳) 등 저출생 타격이 큰 곳들이 가장 많다. 공시가격으로 따지면 3681억원 규모다. 또 이중 234곳(65.3%)는 향후 활용 계획조차 없다.

도시가 아닌 농어촌, 산간 지역 폐교 부지와 건물 활용 방안은 찾기가 더 만만치 않다. 교육청들은 부지를 매각하기보단 임대하거나, 임대가 어렵다면 자체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외지 지역인 경우 홍보나 마케팅을 크게 하지 않는 이상 임대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애초에 사람이 없어서 폐교가 되는 건데, 임대를 주는 게 쉽겠느냐”고 털어놨다.

애써 사업 목적의 임대를 주더라도 1~2년 단위에 그치는 일도 잦다. 또다른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 따라 연간 임대료만 1000만원까지도 가는데, 막상 투자해 들어와서 사업이 안되면 1~2년 뒤에 나가기도 한다”고 했다.

각 학교들 사례를 들여다보면 실제로 단기간 임대 계약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경기 화성시 소재 마산초등학교는 1994년 폐교 이래 30년이 지나도록 안정적인 활용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공시에 따르면 이 학교는 2007~2010년 지역 전시장으로 쓰이다 2011~2013년엔 비워졌다. 2016년엔 캠핑장으로 임대했으나 1년 만에 철수했고, 2021년에도 캠핑장이 들어섰다 또다시 1년 만에 자리를 비웠다.

김훈호 공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폐교 부지 활용은 교육청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게 사실”이라며 “지자체가 함께 폐교 재산을 활용해 새로운 일자리나 교육·문화, 여가 환경을 구축해 새로운 세대를 유인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십억 통폐합 지원금…학교들 “일단 쓰고 보자”

교육부는 통폐합을 진행한 학교에 초등학교는 교당 30억원, 중·고등학교는 100억원 이내 지원금을 주고 있다. 지난해 경상남도교육청을 대상으로 열린 국정감사에선 통폐합 지원금 9억4000여만원을 ‘해외체험학습’에 쓴 한 중학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해외 체험에 참가한 학생은 117명이었는데, 이를 인솔하는 사람 수가 41명이나 됐다. 통폐합 지원금이 부적절하게 쓰인다는 지적이었다.

문제는 통폐합 지원금을 ‘눈먼돈’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특정 학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소규모 학교는 교원이 10명 안팎이다. 업무량은 대규모 도심 학교와 같다. 때문에 지원금 활용 방안을 생각해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원금이 남아돌아 불용금으로 잡히느니 무작정 쓰고 보자는 분위기가 크다”고 털어놨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지원금 사용 내역을 보면 해외여행이 많다. 한번 다녀올 때 수억원을 쓸 수 있기 때문에 흔하다. 물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 투자가 아닌 일회성으로 쓰이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통폐합 지원금을 지자체와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 지원금을 묶어두지 말고, 차라리 교육청이 가지고 있으면서 지역사회와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실용성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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