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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진의 남산공방] 전쟁 전야의 시간

세계 미디어에서 전쟁이 언급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었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해를 넘겼다. 대만 해협에서의 전쟁 가능성도 거론된다. 북한의 위협에 관한 보도도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가 전쟁 전야를 맞이한 듯하다. 두 차례 세계대전 전야인 것만 같은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다.

크리스토퍼 클라크 교수는 제1차 세계대전 원인에 관한 연구 결과인 저서 ‘몽유병자들’에서 전쟁의 출발점을 1911년 이탈리아의 오스만 터키 제국 속령 리비아 침공부터라고 했다. 언뜻 독일, 러시아, 프랑스, 영국이라는 제1차 세계대전 주요 참전국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탈리아의 리비아 침공이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다는 주장이다.

이탈리아가 오스만 터키 제국의 권리를 무시하고 리비아로 침공한 것을 국제사회가 방관하면서, 발칸 반도의 오스만 터키 제국 지배 영역을 탈취하려는 전쟁이 뒤를 이었고, 그 결과 주요 강대국들이 발칸 문제에 끌려들어 가면서 강대국 간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1911년에 세계대전의 미래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마치 오늘날 예멘과 레바논에서의 친 이란계 무장집단의 활동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이란, 러시아 진영과 미국, 이스라엘 진영의 대결로 증폭시킬 가능성에 세계 미디어가 덜 주목하고 있는 것과도 유사하다.

그동안 역사학자들이 찾아낸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필요조건들은 오늘날 유사한 현상으로 발견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융통성이 적고 변동이 없는 동맹 체제 ▷동맹들 간의 상호 비난 ▷군사과학기술의 발전 ▷ 강대국들 간 보호무역 경쟁이 있었다.

이 조건들의 그림자가 오늘날에도 비치는 듯하다. 현재의 동맹 체제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그룹으로 구분돼 국내 정치체제의 변화가 없는 한 동맹이 변화할 가능성은 적다. 또한 민주주의 그룹은 상대의 비민주주의적 실태를 지적하고 있으며, 권위주의 그룹은 상대를 패권주의자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파급된 과학기술 혁신 속에서 군사과학기술 성과 역시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으며, WTO 체결로 절정에 이르렀던 자유주의 경제의 신념은 서서히 퇴조하며 보호무역 기조로 대체되는 것처럼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30년대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에도 세계대전의 필요조건들은 만들어져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파시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는 융통성이 없는 동맹 체제를 만들었고, 민주주의 체제와 신랄한 이념적 대결을 벌였다. 군사과학기술 역시 급속도로 발전했고 국제교역 시장은 대공황을 불러올 정도로 보호무역으로 뒤덮였다. 세력균형만으로는 제어할 수 없었던 호전적 정치 지도자와 정치체제도 존재했다.

저명한 외교사 학자인 루이스 개디스 교수는 당시 독일의 히틀러를 육체적 죽음이라는 신체적 한계로 정해진 시간표 내에서 목적을 반드시 달성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호전적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또한 당대 일본 군국주의 정치체제는 일본의 정치인, 군부, 국민 여론을 모두 전쟁 열풍에 중독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결과는 협상과 세력균형으로 제어되지 않는 호전적 정치지도자와 정치체제의 끊임없는 현상타파 행동으로 인한 세계전쟁이었다.

오늘날에도 비민주적 방식으로 장기집권하고 있는 정치지도자들과 정치제제가 존재하는데, 이들도 현상타파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최근 미디어가 전쟁의 시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다.

다만 오늘날은 과거와 다른 면도 있다. 양차 세계대전 전야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중립적인 초국가적 국제기구의 존재가 그중의 하나다. 당시와 달리 오늘날에는 유엔과 지역 국제기구들이 국제 안보를 위한 플랫폼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인도주의 활동과 함께 국제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비국가단체(NGO)들도 활동 중이다. 인류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로 인한 참혹한 결과를 학습했다는 점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인류가 구태여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비참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핵무기 효과까지 말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은 과거 세계대전 전야의 국제환경과 유사한 면이 많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을 과거의 경험이 존재해 큰 전쟁을 방지할 기회도 제공하는 시대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의 국제 정세와 특정 국가들의 국내 정세들을 예의 주시하면서 신중하게 전쟁의 시대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김광진 숙명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전 공군대학 총장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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