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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식재료 정체성 찾아가는, 그 모든 과정이 수행” [인터뷰-사찰음식 명장 정관스님]
식재료 아는 게 사찰음식 첫 시작
본연 맛 알아야 내몸의 영양분 돼
지금도 새벽 4시 예불로 하루 시작
많은시간 음식조리 통해 수행정진
김치뿐 아니라 나물도 발효 음식
화려하게 왜곡된 사찰음식 대신
절밥 그대로 소박함 공유하고 싶어
올해 조계사 ‘사찰음식 명장’로 위촉된 백양사 천진암 주지 정관스님 . 임세준 기자

이제 막 헤질 기미가 보이는 낡은 목깃의 두루마기 법복은 정성스러운 다림질 덕에 날이 서 있었다. 최근 서울 시내 한복판의 한 한식당에서 만난 정관스님의 첫 인상이었다. 인터뷰와 촬영을 위해 따로 챙겨온 두루마기가 걸려있는 모습만 봐도, 왠지 스님과 많은 대화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사찰음식처럼 정관스님의 첫 인상 또한 그랬다.

‘사찰음식을 하는 수행자’로 불리는, 백양사 천진암 주지인 정관스님을 최근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위치한 한식당 수운에서 만났다. 저녁식사 행사를 준비를 위해 이곳을 찾은 스님은 오전에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주방으로 향해 한참 점검을 한 후에야 인터뷰 자리로 나왔다. 천진암에서 4년 된 된장, 김장 때 만든 무말랭이 등 직접 일부 식재료를 공수하는 것부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는 식탁이다. “음식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하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양사 천진암에 사는 셰프들의 스승=전남 장성군에 위치한 천진암은 국내외 셰프가 배우러 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 시즌3’에 출연해 글로벌한 유명세를 떨친 정관스님은 ‘사찰음식의 대가’로 불린다. ‘셰프의 테이블 시즌3’은 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컬리너리 시네마’ 섹션에 초청됐으며, 에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세계에 우리 사찰음식을 알리는데 발 벗고 나선 정관스님은 올해 조계종 사찰음식 명장으로도 위촉됐다.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수운에서 이번 ‘선한 테이블’ 갈라디너 행사를 준비한 것도 수운의 셰프들과 맺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천진암에 템플스테이를 와 한식과 사찰음식에 대해 배워간 한 셰프는 이후에도 꾸준히 천진암을 찾았다. 정관스님은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세프들도 어려움이 많았다”며 “늘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만 하는 여러 셰프들에게 한끼를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행사”라고 말했다. 상업행사에 나서지 않는 정관스님이 좋은 뜻으로 참가하면서 수운도 이번 행사 수익금을 전액 기부했다.

정관스님은 “사찰음식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는 어떤 모습으로 나와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다”며 “지금 나오는 식재료에 관심을 두는 것이 우선인데, 이번에는 산의 풀과 바다의 풀인 해초를 컬래버레이션하려고 한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혜택이 많고, 복받은 나라다”고 말했다.

정관스님은 식재료를 아는 것을 요리의 첫 번째로 여겼다. 그는 가지를 예로 들었다. “가지가 크는데 거의 두 달이 걸리는데, 5~7㎝ 이럴 때는 그냥 쪄서 소금 간만 해도 부드럽죠. 10㎝ 정도 됐을 때에는 간장을 보태야 하고, 더 지나서 종자 씨앗을 만들려고 가지가 딱딱해지려고 할 때는 더 찌고, 깨소금, 기름을 보탭니다. 20㎝가 넘으면 그간의 에너지를 부드럽게 해줘야 나와 융화가 됩니다. 나중에는 튀기거나 전을 하지요. 먹거리는 내 숨이 떨어질 때까지 나와 떨어질 수 없는데, 그 본연의 맛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식물체도 모두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정관스님은 늘 “음식은 정신과 육체 에너지의 연결고리”라고 강조한다. 정관스님의 하루를 들여다볼 수 있는 ‘셰프의 테이블’을 보면 요리하는 장면 못지않게, 기도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고 스님의 얼굴이 나오는 첫 신에서도 “수행자죠. 셰프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정관스님은 지금도 오전 4시에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많은 시간을 음식 만드는 수행에 쓴다.

▶ “햇볕에 나물도 발효”...세계로 간 사찰음식= “지금은 세계로 미식여행을 갈 때가 아니고, 한국으로 불러들일 때입니다.” 정관스님의 요리가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2015년 미국 스타 셰프인 에릭 리퍼트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아벡에릭’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채식, 비건(Vegan), 대체육 같은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트렌드가 된 요즘 사찰음식이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일. 리퍼트는 셰프로서 살생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불자였다. 그는 한국 방문 당시 정관스님의 음식에 반한 나머지, 이를 널리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2015년 스님을 뉴욕으로 초청해 특별 손님을 위한 요리를 요청했다. 당시 참석한 뉴욕타임스(NYT) 기자 등이 극찬하면서 화제가 됐고 정관스님은 이후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하는 등 명성이 높아졌다.

정관스님은 “우리 음식은 사계절 식재료를 이용하고, 무엇보다 발효음식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며 “발효라고 하면 첫째로 김치만 생각하지만, 가마솥에 삶아서 햇볕에 널고, 말리면서 발효가 되는 나물도 있다”고 말했다. 가령 잎채소를 가지고 만드는 장아찌만 해도, 소금에 절이고, 간장에 담고, 다시 된장에 담으면서 보관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원래 있던 맵고 쌉쌀한 맛이 사라지고 새로운 맛이 난다. “자연에 의해 에너지가 발효되는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 변화하는 식재료를 가지고 하는 우리 음식 같은 것이 외국에는 없습니다.”

우리 음식을 알리기 위해 해외 무대까지 넘나드는 정관스님은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국내에서도 예능프로그램에도 종종 출연해 요리와 법문을 친근하게 전한다. 정관스님은 “조리학교를 나와 외국에서 셰프를 하는 꿈을 보통 꾸는 사람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재료부터 음식의 정체성을 잘 모르면 어렵다. 우리 음식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 젊은 사람들이 천진암으로 배우러 많이들 온다”고 했다. 이어 “절은 팔도의 음식이 다 있는 곳이다. 화려하게 왜곡된 모습 대신 정말 절에서 먹는 그대로 세상 밖으로 사찰음식을 널리 공유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일상 속 음식을 바꾸고, 나와 세상까지 바꾼다= 정관스님은 바쁜 와중에도 식재료를 키우고, 다듬는 것부터 템플스테이 전날 필요한 재료를 장보는 것까지 모든 것을 직접 챙긴다. 출가해서 맨 먼저 하는 일이 음식 만드는데 이바지하는 수행인데 지금도 정관스님의 일상은 다르지 않다. “단식 같은 고행이 수행의 전부가 아닙니다. 절도 있게 수행에 필요한 것만 먹는데 식재료도 본질이 있거든요. 계절마다 식재료도 성품이 다르고 이것을 삶을 건지, 데칠 건지, 생으로 먹을 것인지 물과 불을 통해 하나의 작품 세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치에 맞게끔 찾아가면서 법도를 깨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나와 같이 융화가 되어 영양분이 되는 겁니다.”

사찰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도, 막상 일상생활에서 하려고 하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렵다. 특히 건나물 하나에도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사찰음식을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이 질문에 정관스님은 일단 첫 걸음으로 마트 대신 오일장 같은 곳에 가볼 것을 권했다.

“할머니들이 농사지어서 가지고 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지금 어떤 식재료가 나오는지 보고, 이야기를 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김장철에는 배추만 봐도, 배추는 언제 씨를 뿌리고 김장에는 뭐를 넣는 게 좋은지 묻고 귀담아들으며 적고, 또 다음에 가면 고추와 마늘에 대해 알아보고 이런 식입니다. 식재료에 모든 음식의 역사가 다 들어있습니다.

음식은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고, 환경까지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찰음식은 생명체를 죽이지도 않는다. 정관스님은 “식물도 생명체라 살생이지만, 종자씨앗으로서 종자만 남겨두면 번식하는데 육식은 업연(業緣·업보의 인연)이 있습니다.“

정관스님이 요리 이야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강조하는 싶은 것은 결국 자연보호다. “기후위기를 막아야하고, 자연환경을 보호해야합니다. 뭇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려면 내가 먼저 변화해야 하죠. 자연·몸·마음의 청정이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오연주 기자

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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