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속으로] 소부장에서 공급망으로 진화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대표작인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서 무기, 병균 및 금속을 동인으로 인류문명 발달사를 정리했다. 이후 ‘대변동(Upheaval)’이라는 저서에서는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위기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국가는 발전의 기회를 얻고, 변화에 둔감하며 위기를 외면하는 나라는 쇠락했음을 구체적 사례로 설명했다. 진화론의 원조인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론(변화에 적응하는 종족이 살아남는다)’과 같은 맥락의 주장이다.

2019년 여름, 일본은 전략물자 수출과 관련된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일본은 한국을 다른 나라와 동일하게 대우하겠다고 설명했지만 우리는 본질을 간파했다. 일본 정부가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등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핵심 산업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었다.

우리 정부와 산업계는 혼연일체가 돼 일본의 수출 규제에 기민하게 대응했다. 전략적 가치가 크고 일본 의존도가 높은 100대 핵심 기술을 엄선해 연구·개발(R&D)에 착수했다. 그 결과, 관련 품목의 대일 의존도는 2019년 대비 6%포인트 감소했고, 관련 기업의 매출액은 4134억원 증가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라는 위기 상황을 우리나라 소부장산업을 발전시키는 전기로 활용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는 사이 글로벌 질서가 재편되고 세계 경제는 언제든지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봉쇄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분절화되고, 산업·기술·자원을 전략자산으로 활용하는 경제패권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자원은 없지만 인력이 우수하다. 원재료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자동차, 조선, 스마트폰과 같은 최종 완제품 생산에 특화된 반면 소부장은 상당 부분 해외 조달에 의존해왔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원료 도입, 소부장 수급, 완제품 생산 및 판매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어느 국가든지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워 무역장벽을 세우고 수출입을 규제하면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발생할 수 있고, 우리 산업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올해 국내 수출기업 1094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5.5%가 최근 소부장의 해외 조달과 제품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세계 경제 환경 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정부는 기존의 소부장 정책을 양적으로 확대하고, 질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지난 10월 핵심 전략기술을 100개에서 150개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정책의 범주를 일본 수출 규제로 한정하지 않고 모든 대외 리스크 대응으로 확장한 것이다. 연구·개발(R&D), 해외 인수·합병(M&A), 시설 투자 촉진, 규제 완화 등 다양한 기업 지원도 전방위적으로 이뤄진다. 이와 함께 미래 먹거리 창출과 직결된 신규 핵심 기술에 대한 R&D 투자도 대폭 늘어난다. 올해 산업부의 소부장 R&D 신규 예산 중 신산업 부문은 9.3%인데 내년에는 24%까지 확대한다. 미래 핵심 전략기술의 조기 개발을 통해 미래 공급망을 선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총.균.쇠’에서 한글을 소개하며,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창의적인 우리 국민은 경제위기 상황을 겪을 때마다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150대 핵심 전략기술 확대를 계기로 어떠한 위기 상황에도 흔들지 않는 견고하고 안정된 공급망을 완성하기 위한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더욱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oskymoo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