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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판을 바꾸어야 한다

칼 만하임의 말처럼 개인의 생각은 자신의 직·간접 경험들에 의해 구속되는 경향이 있다. 변화가 빠르게 그리고 끊임없이 진행되면 자신의 생각과 현실의 차이로 인해 혼란스럽고 두렵다. 1세기 만에 침탈, 독립, 혁명, 성장, 민주화를 겪고, 광속의 기술발전을 경험하고 있는 나라라면 내가 처한 상황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어떤 변화가 밀어닥칠지 알 수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기일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더욱 믿고 확신하며 마음에 장벽을 치게 된다.

1950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은 객관적 현상을 주관적 관점에서 왜곡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겉보기엔 명백해 보이는 사무라이 아내의 죽음을 두고 당사자들은 서로 다른 증언을 함으로써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엇갈리는 진술 속에는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한 나무꾼은 이해관계가 없기에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당수 위원회가 정리됐지만, 경사노위는 노동시장에 산적한 구조적 문제들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풀어줄 것을 기대하며 존속했다. 위원회에 거는 기대와 우려를 반영하듯이, 많은 사람이 경사노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다. 이목이 집중돼 있는 만큼,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의 장을 중립적이고 발전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위원회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그간 노사를 비롯한 사회 각 주체들이 경사노위에 참여해 크고 작은 합의를 이뤄왔음에도 우리 노동시장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중구조와 양극화 문제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해법에 대해선 집단 간 극명하게 갈리기도 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자본과 노동 간에 이해관계가 상반되고, 노동자와 사용자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노동법이 헌법보다 개정이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노동시장은 구조적 문제에 더해 4차 산업혁명과 기후위기에 따른 급속한 산업전환으로 인해 판을 바꾸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해 있다. 구조적 문제는 어느 한두 군데를 고쳐서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그렇게 했다가 발생하는 외부 효과로 인해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도 크다.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야말로 변화가 절실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때다.

문제는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이다. 그간 대표성을 가진 노사단체가 경사노위에 참여해 사회적 대화를 지속적으로 해왔음에도, 노동시장은 개선되지 않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기업은 아웃소싱을 늘려가고 있으며,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등 미조직 노동자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사회는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담 스미스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기 때문에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담보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시장 참여자들의 도덕성과 공동체 의식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전제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의 모든 주체가 경사노위에서 마련하는 대화의 장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참여자들은 다양한 정치·경제적 배경과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를 위해 서로에게 담대한 이해와 관용을 가졌으면 한다. 자신과 집단의 이익만을 고집한다면 한 발짝도 전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더 많은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각자 속한 위치와 이익을 잠시 뒤로 하고 ‘무지의 베일’ 속에서 대화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경사노위는 이를 적극 지원할 것이다.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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