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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블랙록의 ETF 사상 첫 상장폐지가 주는 교훈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ETF 하나를 상장폐지하기로 결정했다. 2001년 ETF 시장에 뛰어든지 21년 만이다.

블랙록이 운용하는 미국 ETF의 순자산 규모는 1조8000억원(약 2500조원)에 달한다. ETF개수는 82개다. 이번에 하나 상장폐지하기로 했으니 81개로 감소할 예정이다. 그만큼 ETF 하나를 출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출시한 ETF는 철저히 관리해 왔다는 의미다.

반면 우리나라 사정은 어떤가. 우리나라 전체 ETF시장 순자산 총액은 지난 8월말 기준 566억달러(약 76조원)이다. 전체 시장 규모가 미국 ETF 시장 규모(6조2976억달러)의 1%도 되지 않는 것은 물론 블랙록 한 곳과 비교하기에도 턱없이 작다.

그런데 ETF 종목 수는 611개로, 미국(2822개)의 20%에 달한다. 증시가 활황을 보인 지난해 90개가 새로 상장했으며 올해는 벌써 91개나 새로 선을 보였다. 국내 ETF시장 1, 2위를 다투는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국내 주식형 ETF만 각각 70개가 넘는다.

물론 미국 시장과 우리나라 시장 크기 자체가 워낙 차이가 크기 때문에 순자산 총액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 하지만 순자산 총액은 미국의 1%도 되지 않는데 개수는 20%에 달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운용사들이 백화점식으로 ETF상품을 진열하기 바빴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는 ETF 상장폐지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상장폐지된 ETF는 71개였다. 같은 해 국내 증시 상장폐지 ETF는 25개에 달한다. 시장 규모와 ETF 종목 수를 감안하면 너무 쉽게 ETF상품을 만들고 또 너무 쉽게 없애 버린 것이다.

상장폐지가 원활히 이뤄져 순자산 가치만큼 되돌려 받게 된다고 해도 투자자는 재투자 위험에 노출된다. 들어온 돈을 또 어딘가에 넣어야 하는 고민을 안게 된단 것이다. 또 갑자기 들어온 돈은 예기치 않은 세금 문제 등을 일으켜 자산관리 측면에서 부정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ETF 시장이 급속히 큰데 비해 관련 인력은 규모가 질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성장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TF를 운용하려면 운용 인력뿐 아니라 호가를 제시하고 괴리율을 관리할 유동성 공급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러한 업무를 맡을 인력과 그들이 쌓은 경험치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이러다보니 하루 평균 거래금액이 1억원에도 미치지 못해 사실상 방치된 ETF가 수두룩하고 상장폐지 요건인 순자산 총액 50억원 미만 ETF도 속출하고 있다. 있으나마나한 이들 ETF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다.

다양한 투자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ETF 상품 라인업이 갖춰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투자자 혼란만 키울 뿐이다. 운용사들이 유행을 좇아 경쟁적으로 라인업을 갖추기 위해 찍어내 듯 ETF를 만들면서 국내 ETF 시장이 '먹을 건 없는' 잔치판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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