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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주희의 현장에서] 보릿고개 대신 ‘배추 고개’

최근 마트에서 9000원에 이르는 배춧값을 보면 ‘보릿고개’ 대신 ‘배추 고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과거 보릿고개는 5~6월 햇보리가 나오기 전까지 넘기 힘든 시기로 묵은 곡식은 떨어지고 보리는 여물지 않아 궁핍한 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지금의 배추 고개는 8월부터 이상 기후, 태풍 등으로 ‘여름배추’인 고랭지배추가 귀해진 가운데 가을 김장배추는 아직 여물지 않아 생겨났다. 업계에서는 가을배추가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10월 말까지 배추 고개를 지나야 한다고 한다.

배추가 귀해지자 한국인들의 필수 채소 공급원인 김치마저 동났다. 지난 추석 국내 포장김치업계 1위인 대상의 ‘정원e샵’에서는 종가집 김치 일부 품목이 일시 품절됐다. CJ제일제당 ‘CJ더마켓’에서도 포기김치 제품 일부를 판매 중단했다.

김치 품절 사태인데 가격도 올랐다. 대상은 다음 달 1일부터 종가집 김치의 가격을 평균 9.8% 인상한다. CJ제일제당은 지난 15일부터 비비고 김치의 값을 평균 11% 올린 바 있다.

양상추도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양상추는 7~9월이 가장 수급이 어려운 시기로 꼽힌다. 이 때문에 값싼 가격으로 한 끼를 떼울 수 있는 햄버거에서조차 양상추가 실종됐다. 맥도날드는 이달 일부 매장에서 버거 등 일부 메뉴에 양상추를 정량보다 적게 넣거나 아예 제공하지 않고 있다.

비싼 채솟값에 식탁에서도 채소가 사라졌다. 애호박, 상추, 당근 등 채소로 가득 찼던 장바구니는 가정간편식이나 가공식품이 자리를 대신 하고 있다. 장을 본 주부들 사이에서는 “고기는 사도, 채소는 비싸서 못 살 지경”이라는 푸념이 나오기도 한다.

예부터 보릿고개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이들은 서민이었다. 1960년대보다는 풍족해졌지만 채소가 비싸진 ‘배추 고개’에 필수 채소 공급원인 김치조차 먹기 힘들어졌다. 오늘날에도 ‘배추 고개’는 식량 취약계층의 영양 상태부터 먼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취약계층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소득 감소 시 식료품비를 줄였다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2순위(49%)를 차지했다. 물가가 상승하면 취약계층의 경우 식료품 지출부터 줄인다는 의미다.

특히 배추, 양상추 등 신선 채소는 돼지고기, 소고기 등 육류와 달리 수입이 어렵고 공급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쉽게 가격이 잡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계속 오르는 이 시기에 정부가 취약계층의 식료품 구매 비용 지원에 더욱 힘써야 한다.

농식품부는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를 상대로 과일, 채소, 흰 우유, 계란, 육류 등을 구매할 수 있는 농식품 바우처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1인가구 기준 월 4만원, 4인 기구 8만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치솟는 채소 가격에 농식품 바우처사업 예산안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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