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헤럴드광장] 산업단지에서 보물찾기

촉매(Catalyst)는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화학반응 속도를 조절해주는 물질을 가리킨다. 원하는 화합물을 빠르게 생성해 시간과 비용은 물론 에너지와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 촉매는 제품의 생산량과 수율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지만 겉으로 보이지 않아 ‘산업 현장의 숨은 주역’으로도 불린다.

Pd(팔라듐), Pt(백금), Rh(로듐), Ru(루테늄), Ir(이리듐) 등 귀금속은 쉬 산화되지 않으면서 활용 가치가 커 산업용 촉매로 수요가 많다. 정밀석유화학 분야에서는 수소를 첨가 또는 분리하는 대부분의 공정에 사용되고, 발전소·자동차·선박 분야에서는 배기가스 정화용도로 쓰인다. 최근에는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이차전지, 연료전지, 태양전지 제조에 필요한 전기화학용 촉매로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산업 전반에 걸쳐 가치가 큰 귀금속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석유화학에 쓰이는 Pd는 전량 수입한다. 만약 3년여 전 ‘소부장’ 수출 규제와 같은 귀금속 문제가 터진다면 국내 산업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울산본부가 울산 온산공단 입주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개 중견기업이 208t가량의 귀금속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4개 기업만 약 5000억원 규모이고,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귀금속 촉매비용을 계산하면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더욱이 사용된 폐귀금속 촉매들이 수입해온 국가로 반출돼 새로운 촉매로 재생산된 후 다시 국내로 유통되는 과정에서 재생 로열티까지 지불하고 있다. 기업들의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수출 규제 발생 시 입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고성능·고효율 촉매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나아가 산업단지 내 귀금속에 대한 회수·재생기술 확보 등 고가의 귀금속을 재사용할 수 있는 ‘귀금속 촉매 전 주기 선순환 체제’ 구축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땅 밑 부존자원은 적지만 도시 광산에서라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버려지는 귀금속을 얼마나 캐내고 회수하며 재사용하느냐에 따라 보유자원의 양이 달라진다. 에너지를 적게 쓰거나 효율화해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귀금속 촉매 전 주기 선순환 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지역 주체 간 협력이 중요하다. 산업 현장에서는 귀금속 촉매 관련 노하우나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 외부 기관의 접근이 어렵다. 기업은 대학이나 연구소에 자료를 제공하고, 전문연구자들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핵심 기술을 개발해 산업계를 지원하는 등 상호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생기원 울산본부는 그 일환으로 울산대 및 촉매 전문기업과 협업해 울산산업단지 내 귀금속 촉매의 사용 수량, 공정, 사용 후 처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는 울산뿐만 아니라 탄소 중립을 위한 귀금속 촉매의 전 주기 분석 및 국산화 기술 개발에 중요한 정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 광산의 귀금속을 찾기 위한 보물지도를 그리는 작업인 셈이다. 이 지도가 작게는 지역산업 성장, 크게는 귀금속 촉매 분야의 자원부국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안내해줄 것을 기대해본다.

이만식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울산본부장

carrier@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