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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자뉴스 뒤풀이] 개미는 정말 기관을 이길 수 없나?…오해와 진실

벌써 가을이 오네요. 주식투자자분들의 수익률이 뜨거웠다면 좋겠지만 많은 분들이 수익률에 열만 받으셨을 것 같아 자본시장 소식을 전하는 기자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상반기 수익률 소식이 들려 옵니다. 대표적인 곳이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죠. 또 기관과 개인 할 것 없이 모범사례처럼 따르려는 미국 대학기금들의 성과 소식도 들려옵니다.

흔히 개인투자자는 기관을 이길 수 없다고 하죠? 그런데 또 막상 뜯어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연금 주식 수익률이 얼마였는지 아시는지요? 10% 조금 넘습니다. 지난해 테슬라, 애플 같은 미국 대형주만 몇개 적당히 투자했어도 20~30%는 우습게 번 개인투자자 분들이 많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똑똑하고 주식 잘 안다는 사람들이 나보다도 못 벌었다니!

실제 몇몇 주식유튜브 하시는 분들이 국민연금을 조롱하면서 자기에게 투자금 맡기라는 홍보를 하시는 것도 봤습니다.

그럼 정말 훌륭한 개인은 기관보다 나을까요? 아니면 지속될 수 없는 특수한 경우일까요? 이번엔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의 차이에 대해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노르웨이국부펀드가 올해 상반기에만 200조원 넘게 손실을 봤다고 합니다. 헉! 엄청난 손실이네요. 그런데 정작 당사자 반응은 평온합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막대한 손실을 봤다는 미국 CNBC 기사 화면 갈무리

일단 노르웨이국부펀드에 대해 알아볼까요. 노르웨이는 현재는 지구상에서 가장 복지가 잘 돼 있는 국가, 국민들의 행복수준이 높은 나라입니다.

우리가 아는 행복한 노르웨이는 사실 1960년대 석유가 터지고 난 뒤 이야기입니다. 그 전에는 정말 가난하고 추운 북유럽 국가였죠.

아무튼 석유 수출로 막대한 돈을 번 노르웨이는 고민을 합니다. 이 돈을 그대로 나라 안으로 갖고 왔다가는 과거 네덜란드가 겪은 '자원의 저주' 꼴을 되풀이할 것이란 거죠. 그래서 막대한 석유수익으로 국부펀드를 만들어서 운용하고, 복지에도 씁니다.

그리고 그 국부펀드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 운용하도록 합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하면 주식과 채권 같은 전통자산 투자를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PEF나 부동산 같은 대체투자는 별로 안합니다. 그리고 주로 패시브로 운용합니다. 쓸데없는 운용비용은 줄이고 무엇보다 운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환경오염이나 무기, 카지노 같은 이른바 '죄악주' 투자는 원천 배제한다는 것입니다.

올해 상반기 가장 핫한 주식이 뭐였죠? 워런 버핏이 지분을 크게 늘린 옥시덴탈 같은 석유기업,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귀한 대접을 받게 된 방산주입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이들을 아예 거들떠도 안봅니다.

자연히 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래도 노르웨이국부펀드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단기적인 수익률이 아니라 자신들의 투자철학과 그것을 지켜나간다는 자부심일테니까요.

여기에 개인이 기관투자자를 이길 수 없는 이유 하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원칙을 지키고 그 원칙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킨다는 것입니다. 당장 좀 손해를 보더라도 이것저것 기웃대다 결국 주식을 도박처럼 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식이 채권보다 수익률보다 좋은 이유를 설명하는 'equity premium puzzle' 중 하나로 'Myopic loss aversion'이 있습니다. Myopic은 '근시안적'이란 뜻이죠. 개인들이 투자기간을 장기(long-term)라고 해놓고 정작 수익률을 확인하는 시간 단위(time framing)는 분기나 반기 등으로 짧게 가져가면서 변동성이 커보입니다. 그러면 주식이 굉장히 위험해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근시안적으로 위험 회피적(myopic loss aversion)이 되고 채권처럼 안정적 자산에 몰리게 됩니다. 그러면 채권 수익률은 하락, 주식은 상승합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MTS를 들여다보며 가슴 졸이는 개인투자자분들 대부분 Myopic loss aversion인 셈입니다. 스스로 수익률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죠.

미국 S&P500 지수를 연초 이후로 설정하면(왼쪽), 최근 5년(오른쪽)보다 변동성이 더 커보입니다.

▶두번째는 최근 블룸버그에 올라온 흥미로운 기사입니다. 미국 대학기금들의 상반기 성과에 대한 것입니다. 기관투자자 중에 모범사례로 꼽히는 곳이 미국 대학기금,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이 예일대입니다.

기사를 보면 대학기금들이 금융위기 이후 가장 좋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고 나옵니다. 흥미로운 것은 대학기금 규모에 따라 성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산이 5억달러가 넘는 대형 대학기금은 오히려 소폭 플러스 수익률을 거뒀네요. 이렇게 성과가 좋은 대학기금들의 수익률 원천을 따져보니 PEF가 기여를 많이 했다네요.

미국 대학기금들이 상반기 손실을 입었다는 미국 블룸버그 뉴스 갈무리

여기서 기관투자자와 개인의 운명이 달라지는 또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규모입니다.

주식은 개인이나 기관이나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채권은요? 개인투자자 중에 채권 거래 해보신 분 있으신가요? 그래도 채권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대체투자는요? PEF가 성과가 좋았다는데, PEF는 그 종류도 많고 비용도 만만찮습니다. 1억원 갖고 PEF 사무실 찾아가봐야 입구컷 당합니다.

블룸버그 기사에도 나오듯이 작은 대학기금은 기껏해야 주식과 채권 외에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대형 대학기금들이 애용하는 대체투자인 미국 산림투자를 한번 생각해보죠. 광활한 미국 땅에 나무들이 얼마나 잘 자라겠습니까. 딱히 비용이 드는 것도 없습니다. 알아서 잘 큽니다. 게다가 목재 수요는 늘 지속되죠. 수익률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나무를 상품가치 있을 때까지 키우려면 20년은 족히 걸린다는 것입니다. 수십억, 수백억원을 들여 땅사고 20년 동안 묵힐 자신 있는 개인투자자 계신가요?

때문에 개인과 기관은 처음부터 투자 가능한 자산군의 범위 자체가 다릅니다. 개인은 기껏해야 주식에 채권정도 입니다. 포트폴리오 구성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기관은 개인투자자와 투자 목적, 투자 기간이 다르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우선 개인투자자를 생각해보죠. 왜 투자하시죠? 당연히 돈 많이 벌려고 합니다. 그 돈은 무엇을 위해 쓰려는 것인가요? 내집마련, 자동차 구입, 내년에 갈 해외여행 비용, 노후 대비 자금, 아들딸 결혼자금 등등 목적이 참 다양합니다.

2년 안에 아파트 살 돈을 마련하려고 시작한 투자와 30년 뒤 노후 대비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는 달라야겠죠?

때문에 개인투자자의 투자방식을 GBI(Goals Based Investing)이라고 합니다. 각각의 투자 목적(Goals)에 따라 투자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관은요? 개인이 기관과 가장 큰 차이는 '유한한 인생'입니다. 그 인생 안에 다양한 목적이 있습니다.

반면 기관은 기본적으로 영속성을 전제로 합니다. 투자기간이 '무한정' 혹은 상당한 장기(long term horizon)입니다. 목적은 최고의 수익률 찾기 입니다.

그런데 기관은 기관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하는 기관투자자별 주식매매대금입니다. 참 다양한 기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투자목적이 조금씩 다릅니다.

흔히 주식투자 주체를 개인-기관-외국인으로 분류하지만 기관은 종류별로 천차만별입니다. 때문에 기관별로 주식 순매수, 순매도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외국인'도 하나의 주체로 분류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서로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앞서 언급한 대학기금은 수익률 최적화를 하면 됩니다. 올해 돈 좀 못 벌어도 됩니다. 장학금 좀 덜 주면 되죠. 손실이 너무 막대하면 성공한 졸업생들에게 기부금 좀 달라고 열심히 영업하면 됩니다. 투자기간이 10년이든 20년이든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수익률만 잘 나오면 됩니다.

이렇게 오로지 자금운용만 신경 쓰면서 최적의 수익률을 찾는 투자방식을 Asset only investing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보험사들은 어떨까요? 보험사는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달라고 하면 딱딱 줘야 합니다. 그건 계약으로 맺어진 의무죠. 그런데 보험사가 돈을 막 굴려 손실이 심해져 청구된 보험금을 못주면 어떻게 될까요? 회사 문 닫아야 합니다. 단순히 기업 하나 망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선량한 보험가입자가 피해를 봅니다. 때문에 보험사 자금운용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엄격한 감시와 제재를 받습니다. 은행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보험사들은 지급해야할 돈(Liabilities)을 감안하면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런걸 LDI(Liability-driven investing)이라고 합니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연금의 투자목적은 수익률 최적화가 아니라 국민의 노후기금 보장입니다. 이들에게는 올해 10억을 더 버는지, 100억을 더 버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예상되는 기금 수요를 맞춰줄 수 있는지입니다. 국민들에게 줘야할 연금을 주지 못한다는 건 국민연금에겐 재앙입니다. 당연히 운용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나라에서 운용하는 기관일지라도 국민연금에 비해 KIC가 좀더 적극적이고 수익률도 좋은 이유입니다.

▶다소 거칠게 개인과 기관에 대해 설명을 드렸습니다.

명심할 건 개인과 기관은 아예 투자의 목적과 성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인은 투자의 목적(goals)이 다양하고 기관은 기관마다 투자의 목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기관투자자를 무턱대로 따라하는 것이 개인투자자에게 능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건 마치 '자동차'라는 같은 카테고리라 하더라도 스포츠카와 트럭을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는 이유와 같습니다. 스포츠카는 빠르게 달려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반면 트럭은 많은 짐을 싣고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스포츠카가 더 빠르다는 이유로 '스포츠카가 트럭보다 좋은 차'라고 하는 분은 없겠죠?

다만 개인이 기관에게 배울 점, 따라야할 점은 분명 있습니다. 앞서 노르웨이국부펀드를 설명드리면서 말씀드린대로 스스로 정한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입니다.

기관은 투자위원회가 잘 정립돼 있습니다. 투자위원회에서 최적의 투자 방법을 결정하고 이를 지킵니다. 보험사나 은행처럼 당국이 엄격히 감시하기도 합니다. 만약 변경을 해야 한다면 치열한 논의를 거쳐 심사숙고해 바꿉니다.

오늘도 MTS를 보며 환호하거나 한숨을 내쉰 개인투자자분은 지금이라도 마음 속에 자신만의 투자위원회를 만드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러는 너는 어떠냐라고 반문하신다면, 저는 그저 좋은 글을 쓰려 노력할 뿐이라고 소박하게 답변드리겠습니다.

#헤럴드경제에서 증권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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