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종에서]'나라 걱정'도 국민의 권리입니다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견해의 차이가 있겠지만, 독자에게 알리지 말아야 할 ‘정보’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1940년 미국 하와이주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한 미국 함대의 규모, 배치·활동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친절하게도 자국의 개별 함정 이름과 입출항 날짜까지 보도했고, 일본 하와이 총영사 군지는 하와이 신문에 나온 내용만 모아 보고했을 뿐인데도 일본에겐 ‘충분한 첩보’가 됐다. 그리고 이는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가능케 한 결정적 정보가 됐다. 진주만 공습으로 미 전함 5척이 격침됐고, 200여대의 항공기가 파괴됐으며, 2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렇게 ‘첩보’에 가까운 정보가 아니라면, 알리지 못할 정보는 없다. 특히 정부가 나랏돈을 어떻게 쓰는 지에 대해선 더 그렇다. 지난 6월 30일 한국납세자연맹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출된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지출내역과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윤 대통령이 5월 13일 자택 근처에서 450만원을 지출했다고 알려진 저녁식사 비용의 결제금액과 영수증 및 예산항목, 대통령 내외가 6월 12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쓴 비용 처리 등도 함께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정보가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대통령 때문일까. 정부 부처와 산하 공공기관들까지 국민이 응당 알아야 할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청해도 좀처럼 응하지 않는다. 최근 부쩍 심해졌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선 지난 27일 방역당국은 가족돌봄휴가를 쓸 경우 최대 10일 간 1인당 5만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당국은 마치 새로 마련한 추가 대책처럼 발표했지만, 이는 사실 지난 3월 21일부터 고용노동부가 95억원의 예산을 가지고 집행하던 사업이었다. 애초 예산이 넉넉치 않았고, 넉 달째 진행된 만큼 남은 예산이 충분한지 궁금했다. 한데 고용부 공무원은 남은 예산을 숨겼다. 그 이유는 대통령실보다 다양했다.

정보를 숨긴 공무원이 해당 정보를 줄 수 없다며 댄 갖가지 이유 중 가장 황당했던 건 바로 “국민들의 우려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공무원은 “걱정은 알겠지만, 예산이 부족해지면 우리가 알아서 메울 것”이라면서도 “그 방법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예산 잔액은 별도 집계가 필요하다”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추후 ‘참고자료’ 형태로 공개하는 걸 고려해보겠다”고도 했다. ‘워치독(감시견)’보단 브리핑룸에 얌전히 앉아 던져주는 것이나 받아쓰는 ‘랩독(애완견)’이 되라는 말이다. 언론 본연의 기능을 무시한 채 잘한 일만 국민에게 알리려는 속셈이다.

그 공무원에게 한국 드라마 ‘D.P’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평가들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탈영병’이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룬 드라마다. 각종 호평들이 줄을 잇지만, “한국에선 이런 소재도 다룰 수 있다니 놀랍고 부럽다”는 평가가 가장 많다. 그들과 달리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책을 집행하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우려도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숨긴다고 가려지지도 않는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독단적·일방적(8%)이기 때문이란 이유가 두번째로 높았다. 정부가 국민의 ‘걱정할 권리’를 빼앗아 그런 건 아닐까.

fact0514@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