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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화점에 이런 곳이...‘갤러리 안가도 돼’ 하게 될 것”
5개점서 ‘리조이스’ 테마 전시 성공적
5월 ‘롯데아트페어 부산’도 호평 일색
박서보·故 김창열 협업 상품도 선봬
명동 되살리기 상생프로젝트 준비중
백화점 ‘라이프스타일 주도’ 선행해야
향후 동남아 등 글로벌프로젝트 기획
우수고객 ‘요즘 미술 흐름’ 알 수 있게
국민들 문화 수준 향상에 일조할 것
김영애 롯데백화점 아트콘텐츠 실장(상무)은 이안아트컨설팅 대표에서 지난해 8월 백화점 임원으로 변신했다. 보다 대중적인 접점에서 라이프스타일 선도에 앞장서고 있는 김 실장은 ‘롯데아트페어 2022 부산’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글로벌 프로젝트도 기획중이다. 김 실장이 롯데백화점 본점에 전시된 공예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지난 2007년 서울 청담동 사거리에 글로벌 갤러리 체인인 오페라 갤러리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당시 이 곳은 폐쇄적인 여타 갤러리와 달리 전시장 3면이 유리창으로 된 독특한 구조로 화제가 됐다. “갤러리가 품위가 없다”, “갤러리냐, 백화점이냐”는 등 고루한 핀잔을 들었던 김영애 오페라 갤러리 한국 지사장(General manager)은 돌고 돌아 지난해 8월부터 롯데백화점 아트콘텐츠 실장(상무)을 맡고 있다.

“백화점이 아트 프로젝트를 하면 대중에게 파급효과가 큽니다. 누구나 와서 ‘이런 게 있구나’라며 보고 새로운 아트를 발견하게 되죠.”

20·30대 젊은 세대에서도 아트테크(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가 각광받을 정도로 미술이 우리 삶 속으로 한층 친숙하게 들어오면서 백화점들이 앞다퉈 미술 관련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최고의 고객만 가려서 받을 정도로 잘 나가던 아트 컨설턴트의 길을 걷던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는 현재 롯데백화점의 미술 사업을 이끌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 중이다.

▶백화점이 곧 갤러리, 아트페어까지 연다= “직원분들이 아트콘텐츠실 생겨서 좋아졌다고 말할 때 제일 감사합니다.” 김 실장이 수장을 맡은 ‘아트콘텐츠실’은 지난해 ‘아트비즈니스실’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생긴 조직이다. 물리적인 리뉴얼은 물론 브랜드 리뉴얼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롯데백화점의 아트 마케팅을 담당하는 곳이다. 김 실장은 이안아트컨설팅이라는 개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롯데백화점과 인연을 맺었고, 보다 큰 틀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아 아예 직원으로 합류하게 됐다.

아트콘텐츠실의 존재를 널리 알린 것은 올해 여성의 날(3월8일)을 맞아 5개점에서 동시에 진행한 리조이스(Rejoice) 테마 전시다. “예전부터 롯데백화점 분들을 뵀을 때 명함에 리조이스라고 적혀있어서 뜻을 물었더니 여성들의 꿈과 도전을 응원하는 프로젝트라는 답이 돌아왔죠.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빛을 본 전시입니다.”

지난 5월 부산아트페어에 맞춰 자체적으로 진행한 ‘롯데아트페어 2022 부산’도 김 실장의 작품이다. 고가의 작품들이 팔려나간 것도 화제였지만, 첫 행사임에도 주변에서 쏟아진 호평이 값진 행사였다. “5번이나 방문하신 부산 출신 사업가도 계셨어요. 부산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 것이 자랑스럽다고 하셨죠. 팀원들이 고생한 덕이고, 내년에는 차근차근 더 잘 준비하려고 합니다.”

롯데아트페어에서는 단색화 거장으로 불리는 박서보와 이탈리아 리빙 브랜드 알레시가 협업해 만든 한정판 와인 오프너와 ‘물방울 화가’ 고(故) 김창열과 덴마크 오디오 브랜드 뱅앤올룹슨의 협업 작품 등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브랜드들과의 협업은 한국 미술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인 두 분의 인연을 생각하며 박서보, 김창열 선생님 작품을 나란히 배치했는데 박서보 선생님이 오시더니, ‘어, 창열이가 여기있네’ 하셨던 게 기억에 남네요.”

김 실장은 “부산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 것처럼, 롯데백화점 본점이 위치한 명동도 침체를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생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라며 “백화점이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고, 앞서 나가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예술가 꿈꾸던 아이에서 아트컨설턴트로= 강연과 저술활동까지 활발히 하며 아트컨설턴트로 유명해졌지만 김 실장의 어린 시절 꿈은 원래 예술가다. 8살부터 그림을 그렸던 그는 대학도 순수미술(이화여대 서양화과)을 전공했는데, 막상 미대에 가서 예술가로서 본인의 한계를 느꼈다. 김 실장은 “대학 때 미술사수업을 재미있게 듣고, 현대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며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미술행정, 예술경영학과 같은 전공이 거의 없을 때라 많이 배웠고, 특히 루브르박물관 안에 있는 학교를 매일 행복하게 다녔던 터라 지금도 어느 위치에 어떤 작품이 있었는지 생생하다”고 돌아봤다.

당초 교수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던 그가 처음 갤러리에서 일하는 것을 제의받았을 때는 고민도 적지않았다. 특히 ‘그림을 판다는 게 과연 뭘까’하는 본질적인 질문, 즉 내 마음에 안드는 그림을 팔아도 되는지, 죄를 짓는 건 아닌지와 같은 생각이 그를 맴돌았다. 이에 당시 프랑스에서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던 선생님은 “오만한 생각”이라고 일갈했다. 김 실장은 “ ‘네가 좋아하는 작품을 다른 사람이 다 좋아해야 하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찾아주는 것이 네 역할이지 강요하는 것은 네 역할이 아니다’라고 정리해주셨다”고 회상했다.

오페라 갤러리의 서울 디렉터로 한국에 돌아온 그는 2012년 큰 아이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안아트컨설팅’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미술전문가로 승승장구했다. 김 실장은 “작은 회사였지만 최고의 클라이언트를 받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백화점 소속인 지금은 고객만족을 위해서 보다 친절하게, 각 분야와 함께 폭넓은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큰 차이”라고 말했다. 유통 각 분야와 협업하고, 올 가을에는 음식 브랜드와 같이하는 컬래버레이션 전시도 있다.

그는 “과거의 비즈니스가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이 중요하다”며 “아트비즈니스가 우리 회사에 어떻게 도움을 줄 지 항상 생각하며, 질문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5월 10~14일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 시그니엘 부산에서 ‘롯데아트페어 2022 부산’을 개최했다. 롯데백화점이 준비한 첫번째 아트페어로 업계의 호평을 받았다. [롯데백화점 제공]

▶하반기 넘어 내년 전시 구상까지 빼곡= 유통 대기업들이 저마다 아트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지만, 롯데의 차별점으로 김 실장이 꼽은 키워드는 글로벌이다. 롯데는 동남아를 시작으로 홍콩 등에서 컬래버레이션 전시 및 프로젝트를 기획중이다. 김 실장은 “쇼핑, 케미칼 등 롯데의 여러 계열사가 비즈니스 관계를 이어온 동남아에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해외작가를 소개하는 역할도 하고, 거꾸로 한국작가를 해외에 소개하는 역할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 내 계열사들과 협업도 중요해지면서 아트콘텐츠실에는 아트갤러리팀에 이어 커뮤니케이션팀도 새롭게 꾸렸다. 장기적으로는 근대사와 맞물린 롯데라는 기업의 헤리티지를 조명하는 전시도 준비할 계획이다.

당장 올해 하반기에는 그간 소외됐던 것을 채워주는 전시를 준비할 생각이다. 당초 부산에서처럼 또다른 아트페어를 준비하려고 했으나,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Frieze)가 공동 개최를 하는 등 큰 판이 벌어지는 만큼 오히려 소외된 곳으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 이에 아이디어로 나온 것이 미디어아트와 구상화, 구상조각 전시 기획이다.

“예전에 풍경화가 인기였다면 지금은 공간을 장식하는 역할을 하기 좋은 추상이 잘 팔립니다. 그런데 그림을 제일 처음 배울 때 접하는 것도 구상이고, 극사실적인 구상부터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같은 것들도 있습니다. 미술사의 흐름도 중요하기 때문에 관련 컨퍼런스도 준비해 교육적 역할까지 해 볼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김 실장은 “아트프로젝트를 통해 롯데백화점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고객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노출하는 것을 고민하고, 품격있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만약 우리 백화점 우수고객이라면 따로 갤러리 안 가도, ‘요즘 미술흐름은 이래’, ‘이 작가 많이 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연주 기자

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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