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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은의 현장에서] 은행권 희망퇴직의 역설

‘퇴직조건이 너무 좋아도, 나빠도 문제다.’ 시중은행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임원들이 토로하는 이야기다. 은행이 원하는 인력 선순환 등을 위해 적절한 규모와 인력을 희망퇴직시켜야 하는데 그 조건을 정하기가 여간 쉬운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은행권에서는 올 초부터 희망퇴직 바람이 불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에서 연초 희망퇴직자 수가 1800명을 넘었다. 이런 추세는 외국계 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0월 SC제일은행 직원 500명 안팎이 특별퇴직을 했고, 소매금융 철수를 결정한 씨티은행 또한 비슷한 시기 60%가 넘는 직원들이 희망퇴직을 결정했다. 과거에는 50대 이상이 주축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40대 젊은 직원들도 짐을 줄줄이 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희망퇴직 바람이 강하게 부는 건 호실적을 바탕으로 퇴직조건 자체가 좋아진 데다 금융산업의 구조변화에 기인한다. 비대면 금융전환이 빨라지면서 기존 인력 및 점포 구조에 비효율성이 높아졌다. 은행들로서는 눈앞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구조를 바꿔 은행을 조금이라도 가볍고 효율적으로 가져가겠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 모두 인건비를 포함한 판매관리비가 일제히 증가했는데, 대규모 희망퇴직 등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과거만 해도 은행원들에게 희망퇴직은 평생직장을 떠난 뒤 남은 여생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연료통’ 역할이 컸다. 현실적으로 50세 넘는 나이에 퇴직을 하다 보면 갈 곳을 찾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때문에 희망퇴직자들의 연령대 또한 지금보다 높았다.

지금은 과거와 사정이 다르다. 평생 직장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인력구조 개편이 필요한 은행의 요구와 새로운 곳을 찾아떠나려는 젊은 은행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희망퇴직 연령이 낮아졌다. 우리은행의 경우 희망퇴직 신청 대상 중 행원급은 1980년 이전 출생자였다. 만 40세면 행원급이라도 본인이 원할 경우 떠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회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시기인 만큼 능력만 된다면 거액의 퇴직금을 받고 새로운 곳에서 출발할 수 있다.

은행들이 고민하는 대목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력구조를 탈바꿈해야 하지만 은행이 내보내고 싶은 인력과 실제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인력 사이에서 갭(gap)이 생긴다. 유능한 행원 입장에서는 특별위로금 등까지 더해 최소 수억원을 챙길 수 있고, 그 능력으로 이직할 수 있으니 오히려 희망퇴직이 재충전을 위한 기회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한 외국계 은행은 성과가 좋은 인력이 희망퇴직을 신청하자 ‘어차피 반려될 테니 얼른 취소하라’며 지점장이 취소를 압박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코로나19로 인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희망퇴직 바람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이들이 고민하는건 절묘한 그 어딘가다. 유능한 인력은 남기면서도 유휴인력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내보내는 그 경계선. 거위의 털을 뽑듯 은행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털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을까. 희망퇴직의 성패는 여기에 달렸다.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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