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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랜차이즈보다 ‘1000년 가는 빵집’...빵 굽는 CEO의 꿈 [헤경이 만난 인물-김영모 제과명장]
빵집 보조로 제과업계에 첫 발
年매출 수백억에도 신메뉴 시연
해외탐방서 오래된 가게에 감동
이름 건 빵집 장인정신으로 지켜
1993년 출시 몽블랑빵 아직 인기
시대 변화 빠르게 적응하려 노력
정기적으로 레시피 모아 책 발간
비법 공개? 빵은 역시 손맛이죠
2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파네트리 제과명장 김영모’에서 김영모 명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대담 : 한석희 부장

“빵 만드는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제 저의 꿈은 1000년 가는 제과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빵집 보조로 시작해 한국 최고의 제과업계 CEO로 우뚝 선 김영모 제과명장. 연 매출 수백억원의 회장님이지만 그는 신메뉴 레시피가 나오면 책임자들을 모아 놓고 몇 시간에 걸쳐 몸소 시연을 한다. 50년 넘게 빵을 만든 그가 직접 설명하는 게 아무래도 잘 전달되지 않겠냐는 이유에서다. 김 명장은 천천히 가더라도 튼실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 1000년 역사를 지닌 빵집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1000년 가는 한국 최초 빵집에 도전=김영모 제과명장은 사업이 커지자 주위에서 프랜차이즈로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야 확장이 빠르고 돈도 벌린다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친 것은 다른 꿈이 있어서다.

김 명장은 “돈만 생각한다면 프랜차이즈가 정답이지만, 나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100년, 200년이 아니라 1000년 가는 제과점을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일본 등 해외 기업 탐방을 갔을 때 그는 100년된 가게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외형을 순식간에 늘리고, 반짝 뜨는 것보다 조금 작더라도 내실있게 오래 가자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다.

이름을 내건 빵집이라는 점도 그의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한다. “제가 빵집을 창업한 1980년대만 해도 영어나 외국어로 작명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게 유행이었다.” 그런데 당시 일하던 빵집 사장님이 이름을 넣은 빵집을 해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기술자가 자신의 이름을 상호로 건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고,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자기 이름을 내건다는 게 부담이 컸지만 돌이켜 보면 잘한 일 같다”면서 “한시도 게을리 하지 못한 것도 이름을 걸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빵은 예술이자 과학”=빵은 기술인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김 명장은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본다”며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그는 “조소를 공부하는 딸 때문에 모 대학에서 1년 과정의 미술 수업을 받았다. 해외 투어를 하게 됐는데, 그때 같은 방을 쓴 교수님이 ‘제과제빵 명장도 손을 통해서 하고, 조소 작품도 손으로 두드리고 만지며 한다. 따지고 보면 맥락이 같다. 우리 둘의 손은 생각의 칼날이다’고 말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그는 “교수님에게 생각의 칼날이란 말을 앞으로 인용해도 되겠나며 허락을 구했다”면서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제품을 만드냐에 따라 제품의 질이 달라진다. 정성이 안들어가면 고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과제빵은 과학이라고도 말했다. “유기농 빵을 처음으로 만들 때 유기농 밀을 호주에서 수입했다. 혼자 수입하기에는 양이 적다보니 20개가 넘는 점포를 모아 컨테이너 하나 분량을 주문했는데, 상당수의 빵집이 유기농 빵 만들기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효모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생물 키우는 기술, 재료 성분 등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서다. “재료가 내추럴해지면 부풀어 오르기 힘들다. 그래서 밀가루 안에 산화제나 충전물을 넣은 빵집이 있었는데 그러면 유기농 인증을 못 받는다”면서 “왜 발효가 안되는지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도 공부해야 새로운 메뉴에 도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그니처 빵 없어, 시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속칭 빵돌이, 빵순이들 사이에서는 김영모 과자점의 ‘몽블랑’, ‘마늘 바게트’, ‘바게트 샌드위치’는 3대 시그니처 메뉴로 꼽힌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김 명장은 “시그니처 빵이라는 게 특별히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시그니처는 늘 바뀐다. 시대에 예민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할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가장 애착이 가는 빵을 묻자 “아무래도 몽블랑”이라고 말했다. 1993년에 이 빵을 처음 만들었는데, 지금도 판매가 계속 늘고 있는 빵이라고 한다. 그는 “정말 맛있다. 하지만 옛날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계속 리뉴얼하고 있다. 몽블랑 빵의 속을 파내 그 안에 스파게티를 넣어주면 소스가 빵에 촉촉하게 밴다. 잘라낸 빵 뚜껑 위에 시럽을 바르면 디저트까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아무리 인기있는 제품이라도 리뉴얼 뿐 아니라 다양한 접목을 시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작은 빵집이라도 배울 게 있다면 벤치마킹=김 명장은 기능인으로서도 최고봉이지만, 성공한 경영인으로도 꼽힌다. 그는 “체계적인 경영 수업을 받지 않았지만, 잘 되는 점포를 가면 유심히 살펴본다. 납득이 갈 만한 포인트가 있으면, 직원 교육할 때 전달한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책도 훌륭한 경영수업 자료다. “책은 간접체험이다. 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적용할 만한 게 많다”면서 “기본적인 기술은 선배들한테 배우지만, 그 다음은 스스로 깨달은 걸 가지고 제품 개발에 접목하곤 했다”며 경영도 본인의 노력에 달려있음을 강조했다.

김 명장은 “지역의 유명 빵집 단체투어를 가면 자기보다 작은 규모의 빵집에는 아예 안들어가는 사람도 있더라. 아무리 작은 빵집이라도 배울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늘 호기심을 갖고 살펴본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신메뉴 아이디어는 소재를 찾는게 중요한데, 슈퍼푸드다 하면 그게 뭔지 알아보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코칭을 받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김 명장은 수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책을 발간해 모든 레시피를 공개하고 있다. 본인이 피땀흘려 개발한 비법을 어떻게 공개할 생각을 했는지 의아했다. 심지어 요즘에는 레시피를 수천만원을 받고 전수해주기도 한다. 김 명장은 “레시피가 같다고 다 똑같은 제품이 나오는 게 아니다. 어차피 손끝에서 맛이 나오고, 어떻게 직원을 교육하고 배치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면서 “우리도 새 제품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고 긴장하게 된다”며 역시 끊임없는 변화를 강조했다.

정리=한희라 기자

hani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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