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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여성의 놀라운 법적 지위

경오년 2월, 말금이라는 여종이 수령에게 남편의 친족인 승운이라는 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말금의 남편 역시 노비였지만 증조할아버지대부터 땅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죽자 승운이 말금을 상대로 재산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제기하자 남편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수령은 조사를 지시, 승운이 문서를 위조했음을 밝혀 체포하고 말금의 토지소유를 인정하도록 판결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이자, 남녀 차별까지 있던 조선 사회에서 여자 종이 법적 주체로 권리를 행사했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

김지수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교수는 조선 시대 여성들은 노비에서 양반까지 신분과 관계없이 법적 주체로 인정받고 독립된 목소리를 내면서 법정에 섰다고 말한다. 동시대 중국이나 유럽에선 결혼 여성의 경우 남성을 통해서만 법정에 선 것과 대비를 이룬다. 김 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 법적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다.

조선에서 억울함, 원을 호소하는 방법에는 서면 소원(상언)과 구술 소원(격쟁) 두 가지가 있었다. 전자는 소지로 청원하는 것이고, 격쟁은 문자 그대로 임금이 행차할 때 그 길에서 징을 쳐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의의 감정들-조선 여성의 소송으로 본 젠더와 신분’(너머북스)에서 현존하는 600여건의 조선시대 소원 가운데 155건의 여성 소원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 여성들이 법적 능력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소원제도에서 억울함의 감정이 소원의 정당성과 충분한 근거를 제공했음에 주목한다. 법적으로 침해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생기는 분노와 비탄, 회한, 고통 등의 부정적 감정즉 원통함을 풀어주는 것이 정의의 구현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남녀가 달랐다. 남성이 경우 원과 관련된 분노를 주로 표출한 반면, 여성은고통과 고난을 강조했다. 사회 내에서 자신의 취약함, 연약함, 종속적 지위를 강조함으로써 연민을 일으키는 방식을 택했다.

소원의 내용은 신분에 따라서도 다소 차이가 났다. 양반 여성은 주로 가족의 신원과 입양, 재산 분배, 노비 소유를, 하층민 여성은 세금, 토지, 채무, 묘지, 혼인, 구타 등 훨씬 다양했다.

집단적 억울함을 호소한 경우도 있다. 1422년 시각장애 여성 29인이 신문고를 집단으로 쳐서 국가로부터 받은 곡식을 되갚을 때 지폐로 갚도록 해달라는 공동소원을 제기했다. 조선시대 소원제도는 초기엔 개인적 억울함에 한정했으나 16세기에 오면 친자관계, 아내나 첩의 가족 지위 또는 평민이나 노비의 사회적 신분에 관한 문제로 확대된다. 18세기에는 투옥되거나 죽은 가족구성원들을 대신해 소원하는 게 두드러진 법적 관행이었다.

여성들이 신분과 상관없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지 않은 법적 능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왜 조선시대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됐다는 관념이 지배적인 걸까. 저자는 일제감정기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아내의 권리능력을 잘못 이해해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됐다는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근대적 사법제도를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해방 이후 학계는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한국 법사학회 역시 조선의 사법체계를 서구의 법적 기준으로 판단,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법제사 연구에서 법감정을 천착하기는 처음으로, 정의라는 주제에 대한 역사학의 경계를 넓혔다는 평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정의의 감정들/김지수 지음/너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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