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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읽는 신간]백낙청 50년 연구의 결정체 ‘서양의 개벽사상가 D.H.로런스’외

▶서양의 개벽사상가 D.H.로런스(백낙청 지음, 창비)=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의 오랜 숙제인 로런스 연구에 마침표를 찍었다. 1972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오롯한 책으로 내기는 처음이다. 50년 공부의 결정체인 이번 책에서 저자는 로런스를 서양정신사의 새로운 전환·모색을 한 ‘후천개벽사상가’로 조명한다. 저자는 로런스의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 증거물들을 하나하나 수집하는데 그 중 하나가 로런스의 산문 ‘토마스 하디 연구’. 여기에서 로런스는 성경의 언어를 전복, 하느님 아버지를 ‘법칙’을 대변하는 여성적 원리로 보는가 하면, 진리를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결합으로 보는데, 동양의 음양론을 떠올리게 한다. 백 교수는 로런스의 전복적 생각을 소설 ‘무지개’ 등 여러 작품을 촘촘이 읽어가며 찾아낸다. 또한 물질적 존재의 영역을 떠나지 않으면서 실존과 전혀 다른 차원을 의미하는 ‘being(~이다,~있다)’의 쓰임에 주목한 것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이를 이데아와 현상으로 구분해온 이분법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돌파이자 불교와 노장사상, 후천개벽사상과 회통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한다.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서양에 대한 통투한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적 격동 속에 숨은 한국의 개벽사상을 다시금 들어올린 백낙청 사상의 보고”라고 평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필요와 재미 사이를 오간다. ‘미움받을 용기’로 국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기시미 이치로에게 책은 행복과 동일시된다. 유년시절부터 이어져온 독서체험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책과 인생을 대하는 그의 독법이 담겨있다. 그의 행복한 독서법은 좀 다르다. 책을 읽으면 얻는 게 있으니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필독 리스트라는 건 없다. 그저 책읽는 것 자체를 즐기라고 말한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그만 두라고도 한다. 재미가 없다는 건 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고 시간 낭비니 과감하게 덮을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당장에 다 읽을 필요도 없다. 그 자신 플라톤의 ‘법률’을 8년에 걸쳐 읽고, 릴케의 ‘말테의 수기’는 쉰이 넘어서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책을 읽는 그 순간을 즐기며 읽는 경험을 쌓아가라는 것이다. 독서의 힘은 바로 그 이후에 나온다.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기쁨과 생명의 고양, 공감이 현실을 헤쳐 나가는 힘이 돼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기 어렵다면 책을 읽는 방식을 통해 가능하다는 철학자 다운 제언도 눈길을 끈다.

▶볼라르가 만난 파리의 예술가(앙브루아즈 볼라르 지음, 이세진 옮김, 현암사)=빛과 예술이 화려하게 꽃피웠던 19세기 말 파리, 세잔을 비롯 르누아르, 드가, 피카소, 마티스 등과 교유하며 이들을 후원했던 미술상 볼라르가 남긴 세밀한 기록. 애초에 인상파 화가들은 평론가와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볼라르는 많은 무명화가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개인전을 열어주고 국제 미술시장에 선보이는 등 인상파를 널리 알렸다. 당대 파리 미술계의 민낯을 보여주는 얘기들은 무척 흥미롭다. 볼라르는 물감 가게에서 세잔의 그림을 보고 “복부를 정통으로 맞은 기분”이라고 회상했다. 막 미술상을 시작한 볼라르는 세잔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마네의 처남이 마네 사망 후 ‘막시밀리안의 처형’을 조각내 처분하고, 뤽상부르 미술관이 고갱과 카유보트의 작품 기증을 거부했다는 얘기는 놀랍다. 볼라르가 다른 화가의 부탁으로 드가에게 어떤 재료를 쓰는지 물었다가 핀잔을 듣고, 로댕이 작업실에서 작품들을 깨부수는 모습에 놀란 일화도 생생하고 새롭다. 볼라르는 출판업자로서 판화집을 만들던 경험을 상세하게 풀어놓기도 했다. 책은 볼라르의 자서전을 완역한 것으로 국내에선 처음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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