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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플러스] “김정은 ‘경제 조급함’이 강경태세로” “북한이 밉지만 전략적 관용 필요”
대담 : 이형석 정치부장

한반도 정세와 남북 관계가 또 다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북한은 일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남북 연락채널 차단,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평창의 봄’ 때 화해 메신저 역할을 했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험한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면서 간신히 ‘숨 고르기’ 국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통일·북한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해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향후 전망,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서울 용산 헤럴드스퀘어에서 진행된 좌담회는 이형석 정치부장 사회로 김형석 대진대 통일대학원 교수와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김형석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을 지냈으며, 임을출 교수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추진위원회 민간자문단 위원을 역임했다.

김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해 북미협상이 진척되지 않는데 따른 북한의 조급함과 한반도정세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구조적인 한국의 한계를 보여줬다면서 어렵더라도 북한과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그는 통일부 위상 강화와 함께 남북미관계에 있어서의 더 명확한 국정 기조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임 교수는 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로 가파르게 치솟던 남북 긴장 수위는 다소 가라앉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국 대선, 미중갈등 등 3대 변수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3대 변수를 고려한 치밀한 대응전략을 주문했다.

▶사회=최근 남북관계가 요동쳤다. 북한의 의도 및 배경, 향후 전망, 우리의 대응 등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논의를 진행하려 한다. 북한이 대북전단 비판을 시작으로 연락채널 차단, 연락사무소 폭파, 대남 군사행동 보류 등의 조치를 취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임을출 교수(임)=숨 고르기 국면이라고 하는데 남북 간 긴장이나 충돌 요소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일시적으로 봉합된 상태다. 특히 남북관계는 갑자기 나빠진 게 아니라 작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1년 넘게 남북관계 동력이 약화된 데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 지난달 연락사무소 폭파는 동력이 완전히 바닥난 결과물이라고 본다. 냉정하게 봐야 한다. 남북대화 재개를 통한 국면전환을 모색할 가능성은 당분간 매우 낮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대북정책 독립성, 자율성을 확보할 가능성이 낮다고 인식해 당분간 남북관계 진전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 등을 보면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구조적으로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어렵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일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했지만 이전과 같은 대화와 협상 국면으로 가기는 어렵다.

▶김형석 교수(김)=기존 대북제재에 더해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은 북한의 새로운 리더십인 김정은 위원장의 과욕과 조급함이 작용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해 정치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을 추구했다.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은 정치강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보유국 헌법 명시는 군사강국의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마지막 남은 게 경제강국인데, 김 위원장이 내부 자원을 가지고 이를 도모하려 했지만 국제사회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상황이 되니 미국과 담판을 짓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했지만 마땅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김 위원장이 과욕과 지나친 조급함을 가졌던 것이 상황을 이렇게 몰고 간 것이 아닌가 한다. 2018년에는 부드러운 방법으로 제재를 풀려고 했다면 이제는 강경한 태세로 제재를 풀겠다는 것이다.

▶사회=북한은 왜 이 시기에 이런 고강도 수위의 카드를 선택했다고 보나.

▶임=코로나19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북한은 취약한 방역체계 때문에 한명의 확진자만 생겨도 다 뚫릴 수밖에 없다. 북한은 우리처럼 확진자가 발생하면 진단하고 격리, 치료하는 시스템이 안 돼있기 때문에 신속하고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부분을 알아야 한다. 가뜩이나 한국 정부에 불만이 누적돼 있는데 전단이 날아온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 등에서 가장 부적절한 시기에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전단을 보냈다고 비판했는데 그들로서는 최고 존엄을 훼손하는 내용도 문제지만 남쪽에서 날아온 전단 자체가 코로나19의 확산 기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더 격하게 반응했다고 본다.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요구한 게 대북전단과 관련한 사과와 반성, 재발방지였는데 김연철 전 통일부장관의 사퇴와 대북전단 단속·규제 방침 천명을 북의 요구에 대한 우리 정부의 답으로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김=6월이라는 점도 고려한 것 같다. 이번에 특징적인 게 대남조치를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을 통해 보도했는데 결국 주민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6월은 미국에 의해 강요된 6·25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며 대미 적개심을 고조하는 시점이다. 오는 10월 당 창건 75주년을 성대하게 치러야하는데 미국의 제재 때문에 안 된다며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내부를 결속하기 위해 6월을 택한 것이다. 마침 5월말 대북전단이 살포됐는데 그게 아니었어도 문제 삼았을 것이다.

▶사회=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는 어떻게 평가해야하나.

▶김=북한 입장에선 미국 대선 이후를 생각해야한다. 현재 북한이 쓸 카드도 그렇게 많은 상황이 아니다. 일단 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를 통해 보류함으로써 한국에 공을 넘긴 것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 등 한미가 강경노선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으니 끄때 쓸 카드를 남겨둔 것이다.

▶임=보류라는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 주도권을 계속 가져간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정부의 대응, 처신에 따라 자신들의 군사행동계획 속도와 강도, 시기를 자신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보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당 창건 기념일까지 적정수준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자기들이 주변정세를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맥락이다.

▶사회=최근 남북관계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의 역할도 주목을 받았다.

▶임=북한 내부적으로 수령은 거의 신적인 존재가 갖는 무오류성과 인민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어야하고 무엇보다 인민생활을 책임지는 지도자여야 한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맞물려 김여정 제1부부장의 전면 등장을 두고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북한 정권이 지금 후계자를 고민할 때가 아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후계자라기 보다는, 김 위원장의 목표 관철을 위한 측근 참모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본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김 위원장과 역할분담, 핵심참모역할을 수행한다는 평가는 가능하지만 후계자는 별개의 문제다.

▶김=김 위원장을 놓고 보면 내부 권력장악 어려움보다는 본인의 건강관리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백두혈통’이라고 할 때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까지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이것만 가지고 통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백두혈통인 김 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이 자리잡고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비롯한 빨치산 2세대 등이 움직이는 소위 중국식 집단지도체제로 가는 초입부에 있지 않나 싶다.

▶사회=8월께 예상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임=한국으로서는 최대한 북한을 관리하면서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위해 하긴 해야한다. 다만 북한을 덜 자극하는 예년 수준 또는 보다 낮은 수준에서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 제가 볼 때 북한도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응해 거칠게 몰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으로선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마무리해야하는 해인데다 당 창건 기념식을 앞둔 시기인데 가뜩이나 대남전단 뿌린다느니 하면서 3주간 자원을 분산시켰으니 한미 연합군사훈련 대응에 또 자원을 동원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정면돌파해 승부를 내겠다는 스타일인데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겁나서 피하는 게 아니라 낭비가 심하니 전략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김=전작권 전환은 시기가 문제가 아니라 전작권을 가져왔을 때 안보에 허점이 없도록 조건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차분하게 가져가야 한다. 결국 북한을 비핵화하고 변화하는 방향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확고한 억제력을 통해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적절한 인센티브를 준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낼 필요가 있다.

▶사회=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도 화제가 됐다. 한반도와 남북관계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임=회고록의 진위 여부를 따져보고 확인해 봐야겠지만 핵심은 미 보수 강경파와 일본 등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원하지 않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들이 우리에게 큰 과제라는 것을 재확인해줬다. 결국 어렵지만 남북 간 공조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핵문제와도 연결돼 있는데 남북이 신뢰를 회복해 협력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볼턴이 얘기한 선 비핵화-후 보상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이긴 하지만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적어도 동시행동으로 가는 게 합리적이다.

▶김=회고록은 우리가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미 네오콘 핵심 인물이 북한 문제,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시사해 준다. 볼턴이 한국에 당했다고 했는데 우리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도 보여준 것이다. 또 하나 네오콘이라는 세력이 있지만 미국 시스템이 우리 노력 여하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보여줬다. 통상적인 고정 관념 중 하나가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미국의 힘이 워낙 강해 안된다는 과도한 좌절감인데, 회고록을 통해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교훈도 준다고 할 수 있다.

비핵화에 있어서는 조금 희망적이지만 미 대선 이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같은 자신들에게 부담은 안되면서도 미국의 명분을 살려주는 ‘영변 플러스(+) 알파’를 제시한다면 일부 제재도 해제하는 카드도 써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비아식 해법처럼 북한이 두손 들고 나온다면 좋겠지만 지난 30년 동안 어렵다는 게 확인됐다. 그렇다면 여기서 벗어나 단계적이고 병행적인 동시행동 이행을 시도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사회=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비롯한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향후 대북정책은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김=성패 판단은 아직 이르다. 우선 우리도 너무 조급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 임기 5년 내에 뭔가 성과를 내겠다고 하면 쫓기게 된다. 북한에 의해 이용당할 수 있고 무리수를 둘 수 있다. 남북문제는 70년 이상 지속돼왔는데 앞으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초석을 두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정책이 왔다갔다 해서도 안된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 때 서쪽에서 서해교전이 발생했지만 동쪽에선 금강산관광이 계속됐다. 북한이라는 특수성 고려해 확고한 안보 억제력을 유지하면서도 대화도 추구해야한다.

또 미국과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야한다. 한국은 제재할 카드가 없지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카드가 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제재는 미국이 해라, 한국이 전략적 카드로 인센티브를 줄 수 있도록 역할분담을 하자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임=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과정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실패라고 단정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문제는 코로나19, 미 대선, 미중갈등 등 중요한 변수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도 우리도 사실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변수를 고려한 우리의 대응전략이 나와야한다.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는 인식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 지난 경험으로 볼 때 남북이 전략적으로 소통·협력할 때 협상력이 제고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미국, 중국도 자국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데 남북이 갈등을 겪으면 힘을 못 쓰게 돼있다. 북한이 밉지만 전략적 관용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의 살길도 열린다. 북한을 고립시키고 봉쇄할수록 그 피해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온다.

▶사회=김연철 전 장관 사퇴 이후 통일부장관이 공석이다. 정치권에서는 통일부장관의 부총리 격상 얘기도 나온다.

▶김=통일문제는 특정부서가 다루기 큰 주제이기 때문에 다른 부처와의 효율적 협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통일부 위상 강화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정수행에는 통일, 정치, 경제, 안보, 외교논리 등 여러 논리가 있는데 국정의 큰 흐름을 통일로 잡을 수 있느냐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총리로 격상된다고 해도 한계는 남을 수밖에 없다. 정리=신대원·김용재 기자

사진=이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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