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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년 맞는 하피스트 윤혜순 “코리안심포니는 내 음악의 고향”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 하피스트…‘코심’ 첫 정년
하프에 대한 인식도 없던 시절 입문한 하프 1.5~2세대
‘놀면 뭐하니?’ 유재석, 예술의전당 무대 세운 참 스승
“악기 다룬 적도 없는데 기억력 좋고 집중력 뛰어나 연주 마스터”
6월 말 정년…“코리안심포니는 내 음악의 고향”
1993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수석 하피스트 윤혜순은 “코리안심포니의 내 음악의 고향”이라며 정년의 아쉬움을 전했다.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리스 신화 속 여신들이 품에 안은 ‘천상의 악기’, 화려한 무도회(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2악장)나 천국을 상징(브루크너 교향곡 8번)하는 낙원의 소리. 우아한 선율을 연주하는 하피스트의 손끝은 단단하고 뭉툭하다. 탄탄한 마흔여섯 개의 줄을 다루는 프로 연주자가 되기 위해선 피멍과 피물집이 생기는 고난을 인내해야 한다. “하피스트는 손가락 관리와의 전쟁이에요. 물집이 많이 생기면 소리도 예쁘지 않기 때문에 연습도 요령있게 해야 하죠.”

하프와 함께 한 세월은 어느덧 46년. 열네 살에 처음 하프를 잡은 이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27년을 몸담은 윤혜순(60) 수석 하피스트가 6월 말 정년을 맞는다. 코로나19로 많은 공연이 중단되며 관객과 만날 기회가 사라진 지금, 윤 수석이 코리안심포니에서 보내는 마지막 한 달엔 아쉬움도 묻어나고 있다. 윤 수석의 마지막 공연은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무관중 생중계로 예정된 국립오페라단의 ‘마농’. 최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연습실에서 만난 윤 수석은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피스트 윤혜순은 올초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에게 하프를 가르치며 예술의전당 무대에 세웠다. 그는 유재석에 대해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뛰어나 연주를 잘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 유르페우스 만든 ‘마이다스의 손’…“유재석씨한테 미안해요”=하프와의 인연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던 윤 수석에게 하프를 처음 권한 건 친언니였다. “하프와 피아노의 악보가 같아요. 바이올린처럼 단선율이 아니라 오른손, 왼손의 양손 악보가 있어요. 피아노를 배워본 사람은 금방 할 거라고 해서 시작했어요.” 피아노를 오래 한 경험은 약이 됐다. 시작과 동시에 선생님들의 엄청난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악기를 만지고 잡는 것에 대한 이해력이 빨랐어요.(웃음)”

윤 수석이 하프를 처음 만난 1970년대는 하프라는 악기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던 시절이다. 그만큼 프로로 향하는 길도 험난했다. 그의 첫 스승은 우리나라에 하프를 처음으로 들여온 이교숙. 윤 수석은 그런 만큼 국내 하프 1.5~2세대인 셈이다.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한 그는 1986년 코리아심포니에 입단해 2년간 활동하다, 남편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피바디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하루에 9~11시간 연습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전쟁터에 간다는 자세로 유학을 갔어요. 다시 없을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한국에 돌아와 코리안심포니에 입단한 것이 1993년이다.

하프는 다른 악기와 달리 아직도 대중과는 친하지 않은 악기다. 바이올린, 피아노처럼 동네마다 있는 음악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하프에 대한 역사가 짧은 편이고, 그동안 보급형 악기가 없었다는 점도 멀게 느껴진 이유였을 거예요. 그런데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하프는 유독 특별한 악기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는 편이기는 해요.”

그러다 최근 하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계기가 생겼다. 올 초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세 번째 ‘부캐’ 유르페우스로 변신, 하프에 도전하면서다. 윤 수석은 당시 유재석에게 당근과 채찍을 고루 주는 선생님이었다. 클래식을 ‘1도 모르는’ 유재석을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린 ‘마이다스의 손’이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좀 망설였어요. 유재석 씨가 음악적 배경이 없고 악기를 다뤄본 적이 없다고 해서 더 안 하려고 했었죠.(웃음) 클래식 악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유재석 씨가 나온 방송을 다 찾아봤어요.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고, 어느 정도 해낼 수 있는지 보려고요. 유산슬과 드럼 치는 편을 보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네 번의 수업. 하루 연습시간은 고작 2~3시간이었다. 그것도 세 번은 연습, 마지막 한 번은 리허설이었기에 윤 수석은 연주의 완성을 위해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한다.

“연주는 실황이고, 잘못 하면 다시 할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사실 유재석 씨한테 제가 많이 미안해요. 힘들어하는 데도 계속 밀어붙였거든요. 근데 유재석 씨가 머리도 좋고, 기억력도 좋아요. 집중력도 뛰어나 결국 해내더라고요.”

방송 이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엔 ‘하프를 배우고 싶다’는 메일이 줄을 이룬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너무나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윤 수석은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고, ‘반짝 반짝 작은 별’ 정도는 무난히 연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유르페우스 만큼의 집중력과 기억력은 필요하다는 전제가 따라온다.

하피스트 윤혜순.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 코리안심포니의 산 역사, 첫 정년…“코심은 음악의 고향”=창단 35년을 맞은 코리안심포니에서 그는 창단 이래 처음으로 정년을 맞는 단원이다. 코리안심포니의 ‘산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로 연주가 활발하지 않은 하프를 다루는 만큼 오래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그를 오케스트라로 이끌었다.

“하프는 현악이라고 하기엔 바이올린, 첼로와는 음색이 달라요. 다른 현악기가 깊게 찌르고 들어가는 소리가 있는 반면 하프는 울리는 소리가 나죠. 다른 악기와의 어우러지면 전체적인 음색이 달라지고 잘 어우러져요.”

윤 수석은 코리안심포니가 교향곡은 물론 오페라와 발레, 현대음악 등 다양한 연주를 한다는 점을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1년에 평균 110~120회 정도의 연주를 하는데, 코리안심포니는 개개인의 음악적 베이스가 풍부하다는 것이 굉장한 장점이에요. 코리안심포니만의 음색이 있고, 어떤 지휘자가 와서 요구를 해도 금방 알아듣죠.”

정년을 맞으며 지난 연주 인생을 돌아보니 많은 기억들이 스쳐갔다. 그는 가족들의 도움 없이는 40여 년의 연주 활동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딸이 입시를 준비할 땐 일을 그만둬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연주를 하면 아이에게 시간을 못 주니까요.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다고 할 때 정말 힘들었죠.” 윤 수석의 딸은 엄마를 따라 하피스트가 됐다. 정작 윤 수석은 딸의 진로를 반대했다고 한다. “이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본인이 원하더라고요.”

하피스트가 된 딸과 한 무대에 섰던 날은 윤 수석이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이다. 2013년 무렵 선보인공연이었다. 모녀 하피스트의 이야기가 더해진 연주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2014년엔 제자들과 함께 하프 앙상블 ‘더 하프(The Harp)’를 창단했다. 앙상블 창단 멤버엔 윤 수석의 딸도 있다. ‘더 하프’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 ‘방방곡곡 문화 공감’ 등을 통해 전국을 순회하며 하프를 알리고,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춘다. 오는 10월부턴 인천아트센터에서 매달 무대가 예정돼있다. 오케스트라 단원 생활을 마무리하지만, 하피스트 윤혜순의 연주 인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마농’의 한 음 한 음을 연주하는데 이 곡이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코리안심포니는 제 음악에 있어 고향 같은 곳이에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음악이 직업이긴 하지만, 좋은 음악으로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더라고요. 직업인으로 그런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에요. 오래 해온 만큼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shee@heraldc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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