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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가 주목…K클래식 작곡가 김택수…‘음알못’도 이해할 수 있는그런 음악 하고파
‘화학 영재’서울대 화학과 입학 독특한 이력
2009년 ‘스플래쉬’로 이름 알려…일상의 소리 음악으로
국악 결합 새로운 시도…연말 뉴욕필과 ‘더부산조’ 공연 예정

지난 1월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에선 K클래식이 울렸다.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 김택수(41)의 ‘스핀-플립’. “듣보(듣도 보도 못한)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다행히 그런 편견은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을 강타하기 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물론 미국 오리건 심포니, 퍼시픽 심포니, 샌디에이고 심포니, 디트로이트 심포니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올 연말에는 뉴욕필과 ‘더부산조’를 공연할 예정이다.

“미국에선 최근 김은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 지휘자와 뉴욕필 등에서의 연주가 있었어요. 뉴욕필에선 어느 날 갑자기 ‘당신 음악에 관심이 있으니, 악보를 보내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더라고요. 연고도 없고 지휘하는 분도 몰라 의외였죠. 그 이후로 시너지를 받아 연주가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김택수 작곡가의 길은 늘 새롭다. 현대음악은 난해하다는 편견을 깨고, 접근성을 높였다. 소재는 일상적이나, 음악적 시도는 독창적이다. 김택수의 이름 석 자를 알린 ‘윤이상 작곡상’ 수상작인 ‘스플래쉬’(2009) 이후 찹쌀떡, 커피 가는 소리, 농구공 튀는 소리 등 일상의 소재들이 음악으로 이어졌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한 창작곡도 선보였다.

“음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펀(FUN, 재미)’이에요. 재밌는 음악이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재미가 다를 것 같아요. 연주자들에겐 연주의 성취감이 재미일 것이고, 듣는 사람에겐 음악을 접하는 즐거움, 그를 통해 생각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재미일 수 있죠. 또 악보를 보고 분석하는 사람들의 재미는 숨은 그림 찾기와 같은 발견의 재미일 거예요. 이렇게 음악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충족시키는 것이 제겐 중요해요. 그게 저에겐 퍼즐 같은 거더라고요.”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은 김택수가 꾸준히 음악 작업을 하는 동력이 된다. 그는 “너무 재밌는게 많다”며 “작품의 퀄리티에 방해가 되지 않고, 이게 대체 무슨 음악인지 모를 정도만 아니라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난 몇 년 사이 두드러진 작업은 클래식과 국악의 결합이다. 당초 3일에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더부산조’를 연주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취소됐다. ‘더부산조’는 2017년 코리안심포니가 위촉, 세계 초연한 곡이다. “산조에는 한국 고유의 느낌이 담겨 있어요. 기본적으로 독주 악기와 장구 반주가 연주되는데, 그것을 관현악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해서 만든 곡이었어요.” 산조의 낭만과 정취가 서양 오케스트라를 만나며 독특한 아름다움을 빚어낸 곡이다. 이번 연주에선 디테일을 다듬고, 산조의 특성에 맞게 연주자의 기량이 최대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개작했으나 아쉽게도 국내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졌다.

독특한 음악길을 찾아온 그가 전통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운명 같은 일이었다. “그간 제가 써온 곡은 일상에서의 음악이었어요. 그런데 일상이라는 것이 세계화가 되다 보니, 미국 작곡가들도 비슷한 발상을 하더라고요. 나만 가지고 있는 일상은 아니니까요. 그럼 나의 일상은 뭐가 다른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찾아가다 보니 결국 전통으로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한국의 정서를 서양 음악에 얹은 작업을 꾸준히 시도하지만, 클래식과 국악의 접목은 까다로운 일이다. 그는 “국악을 전공한 사람들처럼 몸에 배지 않다 보니, 이런 방법이 맞는지, 밸런스가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악에서 공통되는 패턴을 찾아가고 있어요. 그 패턴을 이해하면 단지 국악을 쓰는 것 이상으로 음악을 확장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국악처럼 들리진 않지만, 서양음악도 아니죠. 완전히 새로운 언어가 나오면 좋겠어요. 새로운 것을 재창조하는 것이 작곡가로의 꿈이에요. 단지 패턴을 넘어 창제되는 원리를 생각하면, 국악은 재창조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디테일’이다. 그는 “디테일이 음악의 큰 차이를 만든다”며 “그것이 한국적인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전통음악이나 K팝을 차별화하는 것은 디테일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음악은 그 안에 엄청난 표현들이 있고, K팝은 안무만 해도 디테일을 상당히 신경 써요.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들어가는 작은 단어, 동작, 선율이 중요하죠. 저한테도 그렇거든요.”

어린 시절엔 ‘화학 영재’로 불리며 서울과학고를 거쳐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가슴 속에 눌러뒀던 음악을 향한 꿈은 결국 그를 음악인의 길로 이끌었다. 이제는 오선지 위에 복잡한 음표를 그리며 K클래식의 선봉에 서고 있다. 차기작은 ‘소나타 아마빌레’. 조선시대의 세 여성상(기생, 어머니, 무당)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오는 10월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초연된다.

“요즘 ‘너 말고 다른 한국 작곡가는 누가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한국의 작곡가를 정리해서 웹사이트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보다 앞서 길을 닦아온 분들이 있어 지금의 제가 활동할 수 있는 거고, 앞으로 한국 작곡가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음악은 다양한 사람을 고려했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잘 아는 사람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음악,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작곡가가 더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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