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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담인데, 뭐가 문제야?”…편견은 어떻게 작동하나
올포트의 고전 '편견' 첫 완역
집단 혐오, 차별 작동방식 밝혀내
뇌는 범주화·일반화 통해 기억
‘잘못된 일반화’가 편견주의자 만들어
편견은 부정적 말 한마디에서 시작
집단간 상호작용 입법이 해소 효과 커

“물론 사람들이 증오 집단에 부정적 이미지를 품는다고 해서, 실제로 그 집단이 증오받아 마땅한 특질을 발달시켜 우리의 나쁜 예측이 맞다는 걸 확인해주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정적 의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부정적 반사작용이 있을 가능성은 있다.”(‘편견’에서)

코로나 19 팬데믹을 계기로 세계 곳곳에서 인종 차별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이 바이러스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중국인은 물론 아시아인들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선 이태원발 코로나로 성소수자들을 향한 혐오가 커지는 상황이다.

소수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 혐오는 새삼스럽지 않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 부정적 편견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편견과 차별의 기원과 메커니즘을 밝힌 고전으로 꼽히는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의 명저, 1954년 작 ‘편견’은 뇌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연구자들의 연구서’다. 오늘날 편견 문제를 다루는 모든 연구자는 올포트가 내린 편견의 정의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올포트에 따르면, 편견은 “잘못된 일반화에 근거해 어떤 집단과 그 구성원에 대해 지니는 적대적 태도와 감정”이다. 우리가 편견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 뇌는 일반화, 범주화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기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정상적이고 자연스런 속성으로, 이 과정에서 부적합한 대상까지 아우르는 ‘잘못된 일반화’가 고착되는 게 문제다.

올포트는 잘못된 일반화, 즉 “비합리적 범주는 순전히 소문에 의한 증거와 정서적 투사 그리고 망상으로 구성될 수 있으며 따라서 거기에는 일말의 진실조차 없을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편견은 흔히 적대적인 말, 차별적 행위, 물리적 공격의 형태를 띤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편견을 적대적인 말로 표현하는 데 그치지만 일상화되면 차별적 행위로, 다시 물리적 폭력으로 나아가게 된다. 홀로코스트는 바로 이런 전형적 단계를 밟았다. 히틀러의 적대적인 말에 독일사람들은 유대인 이웃과 친구를 회피하게 됐고 이는 유대인 차별법 제정으로, 이어 유대교 회당 방화, 유대인 공격 등으로 발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차별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게 된다. 자신의 반감이 이유가 있으며 비난의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흑인에 대한 편견을 지닌 백인이 흑인은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난다거나 본성이 게으르기 때문에 거부당하는 것이라며 비난을 정당화하는 식이다.

편견주의자는 두 부류다. 자신의 편견을 어떤 상황에서도 바꾸지 않고 가책을 느끼지 않는 성격화된 사람이 하나고, 대부분은 사회나 조직의 규범과 같은 집단 분위기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동조자들이다. 동조자들은 굳이 모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상황을 모면하는 걸 최상으로 여긴다. 이는 편견주의자의 반대편인 관용적주의자 부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편견의 피해자 집단에서도 집단 구성원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도 흑인이면서 흑인을 경멸하거나 남성의 눈으로 여성을 혐오하는 여성이 그런 부류다. 올포트는 이런 모순적 행위를 자기 방어로 설명한다. 이는 강박적 근심이나 구성원 지위의 부인, 위축, 어릿광대 노릇, 지배집단과 동일시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저자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희생양 만들기의 심리적 과정도 살핀다. 편견을 먹고 사는 선동가들의 특성에 주목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역사상 많은 정치선동가들은 지배집단과 다른 인종이나 민족 집단, 다른 이념을 지닌 집단에 편견을 이용한 편가르기에 탁월했다. 불안을 야기하고 대중의 관심을 가짜 쟁점으로 돌려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저자는 선동가들은 늘 잠재적 추종자들이 있기 때문에 성공하기 마련이라며, 내적 안정과 성숙한 자아발달을 이룬 사람들을 추종자로 삼고자 할 경우 선동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올포트는 편견을 줄이고 집단간 갈등을 해소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는데, 그가 적개심을 줄이는 방법으로 제시한 건 집단 간 접촉이다. 어떤 집단이 다른 인종이나 민족 집단의 구성원과 더 많이 접촉할수록 그 집단에 대한 편견을 훨씬 덜 지니게 될 것으로 봤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접촉의 성질이다. 동등한 지위의 흑인과 직업적으로 접촉한다든지, 직업상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흑인을 아는 것 등이 편견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격 구조 안에 깊이 뿌리내린 것이 아닌 한)편견은 다수 집단과 소수 집단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동등한 지위에서 접촉할 때 감소할 수 있다”는 게 올포트의 주장이다.

특히 올포트는 입법을 통한 교정에 방점을 뒀는데, “법은, 그것이 집행된다면 차별에 맞서는 전투에서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며, “대중은 미리 전향자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정사실이 그들을 바꾼다”고 강조한다. 흔히 흥분 상태에 있던 대중들이 선거나 입법 후에는 기꺼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입법의 메시지는 불관용의 행동을 위험선까지 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다. 외적인 행동의 통제는 습관과 감정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사적인 편견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올포트가 이 책을 쓴 시기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와 2차 세계대전의 충격, 냉전 위기, 미국내 흑백 인종 분리와 차별에 대한 저항이 거세던 시기로, 올포트는 근거없는 적개심을 과학적으로 들여다 보려했다. 이는 맬컴 엑스와 마틴 루서 킹을 비롯, 미국 시민권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 완역판이 출간된 것은 처음으로 25주년 기념 특별판을 번역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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