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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메달리스트 현정화 “1등이 다는 아니더라…행복 놓지 않았으면” [메달리스트]
메달리스트 인터뷰

[헤럴드경제] “탁구공이 다 팔려서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탁구 인기가 대단했었죠.”

한국은 1988년 탁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휩쓸며 전국에 탁구 황금기를 불러왔다. 그 중심엔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그랜드슬램(단식·복식·혼합복식·단체)을 달성한 현정화(51) 한국마사회 여자탁구단 감독이 있었다.

현정화는 지난 2010년 국제탁구연맹(ITTF)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선수 출신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려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소 5개의 금메달을 따야 하는데 현정화는 1988년 서울 올림픽(복식)과 1987년 뉴델리(복식)·1989년 도르트문트(혼합복식)·1991년 지바(단체)·1993년 예테보리(단식)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공로 등을 인정받았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헌액된 66명 중 한국 출신은 현정화가 유일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예선전에서 소련을 상대로 경기를 펼치고 있는 현정화(왼쪽)와 양영자. [헤럴드경제DB]

현정화-양영자, 금메달 휩쓴 ‘환상의 복식조’

1985년 국가대표가 된 현정화는 당시 5년 선배인 ‘에이스’ 양영자와 호흡을 맞춰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동메달 획득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현정화-양영자 조는 완벽에 가까운 호흡으로 ‘환상의 복식조’로 불리기도 했다.

“양영자 선배와 호흡은 최고였죠. 나중에는 어떤 서브를 원하는지, 어디로 움직이는지 눈빛만 봐도 알 정도로 잘 맞았어요.”

올림픽이 열리기 3년 전부터 복식조로 함께한 두 사람은 1988년 서울 올림픽 8강에서 네덜란드를 2대0(21-10 21-11)으로, 4강에서 일본을 2대0(21-19 21-9)으로 가볍게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현정화-양영자 조는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자오즈민-첸진 조마저 2대1(21-19 16-21 21-10)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88 올림픽 땐 자리가 없어서 계단에 앉아야 할 만큼 열기가 대단했죠. 사실 국민들의 응원이 부담은 됐지만 그 기를 받아서 우승까지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체력적으로 힘들 때 응원이 큰 도움이 되거든요.”

포기하려던 순간 힘이 된 한마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복식 동메달, 단식 동메달을 딴 현정화는 “은퇴까지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22세에 5개의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개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3개의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그리고 올림픽이라는 ‘꿈의 무대’에서도 금메달을 보유하고 있었던 현정화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유망주 중 한명이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의 동메달도 대단한 성적이었지만 현정화에게 ‘노 골드’는 만족할 수 없는 결과였다.

“전 사람들이 1등만 하는 현정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올림픽 2연패에 대한 중압감이 더 컸었죠. 근데 동메달에 그쳤으니…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그때 ‘결과에 상관없이 현정화를 응원한다’는 한 팬의 말을 듣고 순위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다시 라켓을 잡은 현정화는 1993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남녀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단식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현정화 이후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는 27년째 중국 선수들이 버티고 있다.

“중국은 선수층이 워낙 두텁기 때문에 잘하는 친구들이 많이 나와요. 한번은 제가 중국 감독한테 선수들 많아서 부럽다고 하니까 ‘결국 너희가 중국 애들을 이겼잖아. 그런 선수를 만드는 게 너네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우리나라는 선수 한 사람한테 기술을 입히고 결국 우승을 하게끔 만든다는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스포츠 사상 첫 남북단일팀

남북은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을 구성했다. 현정화는 당시 홍차옥, 북한의 리분희, 유순복과 단일팀을 이뤄 여자단체전 9연패를 노리던 중국의 아성을 허물고 금메달을 따낸 ‘지바 기적’의 주인공이다. 당시 북한 리분희와 단일팀으로 복식 경기를 치른 현정화는 “처음에는 서로 자존심 싸움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일본에서 한 달 정도 합숙 훈련을 했어요. 리분희 선수도 저도 목표가 같았기 때문에 금방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정말 우리가 잘사는지 궁금했나 봐요. 돈을 얼마나 버는지 물어보더라고요.(웃음) 근데 자기들 이야기는 절대 안 해요. 북한에서는 서브가 ‘처넣기’, 드라이브는 ‘감아치기’, 리시브 같은 경우는 ‘받아치기’ 스매싱은 ‘때리기’이더라고요.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배우 하지원, 배두나 주연의 영화 ‘코리아’(2012)로 제작되기도 했다.

서효원(33·한국마사회) 선수를 지도중인 현정화 감독 [헤럴드경제]

은퇴 후 감독으로…“선한 영향력 주고싶다”

1994년 은퇴한 현정화는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장, SBS 해설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는 한국마사회 탁구단에서 후배를 지도하는 감독으로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현정화는 후배들에게 “탁구대 앞에서는 자만하지 말 것”이라고 조언했다.

“탁구대 앞에서는 똑같아요. 누가 승리하고 패할지는 모르는 거죠. 겸손하게 훈련을 하고 경기 땐 집중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1등이 다는 아니야’라는 말도요.(웃음) 순위에 대한 부담 때문에 행복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거든요.”

끝으로 그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이에 현정화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옛날엔 메달 따면 국민에게 큰 즐거움이고 힘이 됐었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로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제는 감독으로서 스타성 있는 선수를 배출해 또 한 번 탁구 신드롬을 일으켜보고 싶네요.”

정지은 기자/jungj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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