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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들의 땀방울·숨소리까지 디테일 완벽…‘안방 1열’의 호강
코로나19시대 ‘랜선 공연’ 제작과정
한 편당 카메라 6~15대 집중 투입
최고의 화질·음향으로 현장성 추구
제작비 적게는 수백만원서 수억 들어
녹화중계는 반복촬영에 수개월 소요
실시간 중계는 리허설로 완성도 ‘UP’
엄숙한 객석 대신 실시간 채팅 소통도

우산 위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가 모니터 너머에서 들려온다. 배우의 얼굴에선 옅은 주름이 선명하게 잡히고, 그 위론 땀방울이 흐른다. ‘객석 1열’이 아니고서야 느낄 수 없던 섬세한 장면들이 작은 화면을 가득 채우자, 관객들이 응답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셧 다운’ 된 공연계에 색다른 문화 트렌드가 등장했다. ‘안방 1열’에서 무대를 만나는 ‘온라인 상영회’. 문화 향유 기회를 잃은 관객 앞에 등장한 ‘랜선 공연’이 위축된 문화예술계에 새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각양각색 랜선공연…한 편당 카메라 6~15대, 생생한 현장감 추구=국공립 공연장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상영회는 제작 방식, 비용, 장비 등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방향성은 같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고의 화질과 음향, 생생한 현장성을 추구한다”고 입을 모았다.

작품 한 편당 사용하는 장비와 동원되는 카메라 숫자도 상당하다. 가장 많은 카메라가 투입되는 곳은 예술의전당이다. 예술의전당에선 2013년부터 진행한 공연 영상화 사업인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을 통해 노하우를 쌓았다. 신태연 예술의전당 영상사업부 제작PD는 “최종 목표는 영화관 상영인 만큼 영화용 4K 카메라와 5.1 채널 음향을 사용한다”며 “ 작품 한 편당 10~15대의 카메라, 60명의 인력을 동원한다”고 말했다.

경기아트센터는 코로나19 이후 국내 최초로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 타이틀로 관객과 만났다. 모든 공연의 생중계 촬영에는 방탄소년단·아이유 등 K팝스타들과 함께 한 국내 최고의 콘서트 연출팀이 참여한다. 권영훈 경기아트센터 미디어창작소 PD는 “작품 한 편당 6~8대의 EFP 카메라를 사용한다”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무대 조명을 관객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을 영상으로 옮길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장성’과 ‘현실감’을 살리는 것이다. 무용 공연을 촬영할 때는 예술계의 ‘불문율’도 깨진다. 권 PD는 “예술계에선 무대 위에 카메라가 올라가는 것을 금기시했는데, 무용단이 도는 장면에선 카메라가 함께 무대를 돌며 생생한 현장감을 살린다”고 말했다.

온라인 무관중 생중계를 진행하는 세종문화회관과 마포문화재단 역시 6~8대의 카메라를 사용하고, 경우에 따라 지미집 등 특수 카메라와 생방송 송출 장비를 동원해 실감나게 촬영한다.

편당 제작비도 최소 수백만 원에서 최고 억대에 달한다. 경기아트센터에선 한 작품당 880만원으로 인터넷 송출까지 마친다. 권 PD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며 쉬고 있는 장비들이 많아 적절한 가격 수준으로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다”며 “특히 겨울에는 스포츠 중계업체에서 카메라를 쓸 일이 없어 330만원의 적은 예산으로 양질의 콘서트를 라이브로 진행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예술의전당의 편당 제작비는 1억~3억원. 이중 절반은 초상권을 포함한 저작권료에 해당한다.

▶ “클래식을 ‘뮤직뱅크’처럼, 연극은 복선까지 염두해 촬영”=녹화중계와 생중계는 촬영 방식도 달라진다. 수차례의 촬영을 거치는 예술의전당은 작품 한 편당 제작 기간이 무려 4~7개월이다. 촬영을 할 때에는 공연 전체를 한 번에 찍는 ‘원테이크’ 방식으로 진행한다. 신 PD는 “절대로 끊어 촬영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한 번에 촬영하고, 카메라 배치를 바꿔 몇 차례 추가 촬영을 한 뒤 교차편집을 통해 영화 같은 공연 영상을 만든다.

‘싹 온 스크린’에서 파격적인 연출과 촬영으로 화제가 된 영상은 클래식 공연인 ‘디토 파라디소’와 ‘노부스 콰르텟’이다. 두 영상은 클래식이 정적인 공연이라는 선입견을 완전히 깨준다. 신 PD는 “클래식이지만, 리듬에 맞춰 1초에 한 번씩 컷이 바뀌었다”며 “‘뮤직뱅크’처럼 화려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실시간 중계’로 시청자와 만날 경우엔 철저한 사전 리허설로 완벽한 ‘생방송’을 진행한다. 리허설에선 실제 공연에서 하는 것처럼 합을 맞춰본다. 연극의 경우 무대에서 한 눈으로 보던 것을 카메라로 편집의 묘를 발휘한다. 권 PD는 “카메라가 주인공을 찍는 동안 조연의 표정이나 행동에 복선이 될 수 있는 장면이 있다”며 “영상으로 작업할 때에는 전체 스토리의 이해를 높이는 장면을 염두해 찍고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무관중 생중계에선 배우들의 메이크업도 달라진다. 무대에서 배우들은 윤곽을 뚜렷하게 하는 짙은 메이크업으로 관객과 만나는 반면 영상에선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으로 바꾸는 사전 준비 과정을 거친다.

‘랜선공연’의 장점…생생한 디테일·실시간 소통=현장에서 보던 공연을 영상으로 만날 때의 가장 큰 장점은 안방이 ‘객석 1열’이 된다는 데에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공연장의 뒷좌석에선 볼 수 없던 장면을 화면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배우의 땀방울이나 피아니스트의 손과 패달, 무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단체 군무 등 접근이 제한적이었던 공연의 디테일을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권영훈, 신태연 PD)는 것이 ‘랜선 공연’의 재미다.

온라인 상영회에선 엄숙했던 공연장에선 볼 수 없었던 ‘소통의 장’도 마련된다. 마포문화재단 관계자는 “집안에서 보다 편안하게 즐기며 댓글 참여 등 공연에 대한 소통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시간 채팅창을 통해 공연에 대한 소감과 정보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니,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공연의 느낌을 공유하는 모습이 마치 스포츠 중계 현장 같다”고 했다.

권 PD는 “현장 공연을 온라인으로 통해 송출해보니, 진짜 소통은 관객들 간의 소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며 “매개의 역할로 예술의 가치가 충분히 확장될 수 있고,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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