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정치적 부족주의’는 어떻게 국가를 좀 먹나
“집단 간 대립·혐오의 원인은 부족주의”
에이미 추아 교수, 美 ‘정치부족’ 해부
백인도 엘리트-노동자로 분열
소속감·배타적 울타리 이중적 행태
‘부족깨기’ 집단간 연결운동 희망의 싹이…

베트남 전쟁패 배도 부족주의 몰이해 탓
자유 대 공산진영 냉전논리에만 매몰
“미국은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윌슨의 주장의 경우 그 말이 틀려서 놀랍기도 하지만 매우 맞는 말이어서 놀랍기도 하다. 세계 어떤 나라도, 다양한 배경의 이민자들을 새로운 국가 정체성으로 묶어 내는 데 이렇게 성공하지 못했다.”(‘정치적 부족주의’에서)

2012년 5월1일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점령하라’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뜨거운 이슈가 된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기치로 내건 시위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참여자들은 90%가 고졸 이상의 학력에 81.2%가 백인이었고, 참가자 절반 이상의 소득이 7만5000달러(한화 약 9100만원)가 넘었다. 한 마디로 백인, 고학력자에 부유한 이들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는 운동이었지만 당사자들은 빠진 운동이었던 셈이다.

국제 분쟁전문가이자 ‘불타는 세계’‘제국의 미래’의 저자인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의 신작인 ‘정치적 부족주의’(부키)는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는 집단 간 대립과 혐오의 원인을 기존의 좌우 진영논리가 아닌 부족주의 관점에서 해석한 점에서 새롭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두 개의 백인 부족으로 나뉜다. 하나는 정치 활동 참여도가 높고 코스모폴리탄적 가치를 받아들인 세계시민이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도시연안 지역’의 백인이다. 세계시민은 얼핏 부족적인 것과 정반대되는 듯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코스모폴리탄주의 자체가 엘리트 계층의 배타적인 부족적 표식이다.

이들 집단의 특징은 다른 이들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려 드는데, 가령 조잡하고 싸구려 같은 것을 질색하며, 그런 부류를 저급하다고 여긴다.

반면 다른 백인 부족은 교육 수준이 낮고 인종주의적이며, 애국적인 ‘농촌·중서부·노동자 계급’ 백인이다. '버드와이저’‘성조기’‘미국을 위대하게 ’는 이들의 전유물이다.

이들은 ‘코스모폴리탄 백인’을 진짜 미국인에 대해선 관심도 없으면서 권력의 지렛대를 통제하는 소수집단으로 여기며 경멸한다. 입으로는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면서 온갖 ‘기회쇼핑’에,‘유리바닥’을 다진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트럼프 당선에 결정적 공을 세운 노동자부족이다.

프로레슬링 팬들 역시 트럼프 지지층과 일치하는데, 그들에게 트럼프는 위선적인 엘리트 계급에 맞서 성전을 치루며,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거인’처럼 보인다. 실업자에 빚이 있고, 위로 올라갈 사다리가 없는 이들 부족은 공동체 의식을 공유한다.

저자는 최근 노동자백인내에서도 또 다른 부족이 생겨나고 있다고 전한다. 그 중 하나가 정부가 자신들을 하층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소버린 시티즌’과 신이 부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단인 ‘번영 복음주의’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부족은 인종 민족 젠더 성적 취향에 따라 더욱 세분화되는 추세다. 백인들은 흑인 및 다른 기타 소수자들에 의해 자신들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다.

미국의 분열은 얼핏 모순처럼 보인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로 수세기동안 시장경제, 민주주의, 개인주의 등의 가치로 다양한 집단을 끌어들이고 동화시키며 국가 정체성을 형성해왔고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하위집단을 초월하는 더 강하고 포괄적인 '미국인'이라는 집단 정체성이 있기에 가능했다.

저자는 이를 ‘슈퍼 집단’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슈퍼집단은 미국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문제는 이런 미국 예외주의를 외부에 투사할 때다. 저자는 부족의 이익을 떠난 통합주의가 다른 곳에서도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그 결과는 실패였다고 지적한다. 가령 2011년 카다피를 무너뜨린 미국은 리비아의 미래는 리바아 국민의 손에 달려있다며 물러섰는데, 140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리비아는 오히려 분열됐다. 오바마는 이를 재임 기간 중 ‘최악의 실수’로 꼽았다. 미국이 전적으로 패배한 베트남도 베트남의 민족주의가 얼마나 강력한지 간과하고 자유 대 공산 진영의 싸움이라는 냉전 논리로만 본 결과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작금의 부족주의가 미국을 좀 먹고 있다고 진단하며, 최근 수많은 하위집단의 난립 속에서 정치적 부족을 깨기 위한 시도에 희망을 건다. 뉴욕주의 한 작은 도시에서 보스니아계 무슬림과 유니테리언 기독교도가 함께 슈퍼볼을 본다든지, 뉴저지주 해커츠타운 사람들이 ‘미국을 다시 연결되게 하자’는 모임을 조직한 것 등이다. 또 실리콘밸리 테크놀로지 업계에선 미국 중서부 인재들을 발굴하는 등 저쪽에 가닿으려고 노력중이다. 저자는 “허황된 희망으로 보이거나 총상에 반창고를 붙이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상이한 집단에 속한 개개인이 서로를 인간으로서 이해하고자 할 때 실제로 막대한 진보가 이뤄질 수 있음”을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무리짓기는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역으로 말하면 배제의 본능이기도 하다. 최근의 한 연구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4~6세의 아이들을 무작위로 붉은색 집단과 푸른색 집단으로 나누고 그에 맞는 색의 티셔츠를 입힌 뒤, 붉은색 혹은 푸른색 티셔츠를 입은 다른 아이들이 등장하는 컴퓨터 편집 이미지를 보여줬다. 영상을 본 아이들은 정보가 전혀 없는데도 자신이 속한 집단과 같은 색 옷을 입은 아이를 ‘더 좋다’며 더 많은 자원을 분배하고 강한 선호를 보였다.

책은 미국 내부의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어느 나라도 이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정치적 부족주의/에이미 추아 지음, 김승진 옮김/부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