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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누굴 탓하랴…‘막말·무능’ 통합당은 자멸했다
민주당, 4·15 총선에서 통합당에 대승 거둬
지역구에서만 민주당 163석 > 통합당 84석
무력한 수장·공천 잡음·막말 논란에 참패 자초
패장 황교안 “패배의 책임지고 물러나겠다”
통합당은 당장 지도부해체 등 내홍 속으로
일각 “‘보수의 품격’부터 새롭게 정립해야”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제21대 총선일인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개표상황실에서 총선 결과 관련, 당대표직 사퇴를 밝히고 있다. [연합]

장수는 무능했고, 병사들은 오합지졸이었다. 군사들을 잘 지휘해야 할 우두머리(장수)는 용맹 여부를 떠나 그릇 크기를 의심케 만들며 리더십을 확신시켜주지 못했고, 일부 장병들은 전장에서 돌출행동을 일삼으며 전체 군기를 훼손했다. 그러다보니 전투력은 상실했고, 스스로 무너졌다. 4·15 총선에서의 미래통합당의 모습이다.

유권자들은 이런 통합당을 냉정하게 심판했다. 아니, 냉혹에 가까웠다. 자중지란으로 몰락했으니, 누구를 탓하랴.

4·15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압승했고, 통합당은 처참하게 패했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 더불어시민당은 단독으로 180석(이하 전국 개표율 99.3%·16일 오전 6시 22분 현재 상황)의 의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103석 확보에 그쳤다. 개헌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3석을 넘긴 초라한 성적표다. 지역구 투표 결과만 보더라도 민주당(163석), 미래통합당(84석)으로 더블스코어 차이가 났다. 결국 ‘국정안정론’을 내세운 민주당이 ‘정권심판론’을 앞세운 통합당에 압승을 거둔 것이다.

정가에선 코로나19가 전체 선거 양상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게 한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 대해 안정적으로 관리한 문재인정부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가 더 컸기에 통합당이 기치로 건 ‘문재인정부 심판론’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통합당으로선 코로나19 국면에서 문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에 대한 공세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이에 유권자들에게 대안세력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분석도 강하다.

이게 다 일까. 통합당 참패 원인을 ‘코로나19’로만 돌릴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통합당은 역대 총선 사상 최대의 약체 야당이었다. 단합력은 ‘모래알’이었다. 통합당 수장인 황교안 대표는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했다. 일단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결기가 부족해보였다. 여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이낙연 후보가 종로 출마를 일찌감치 정한 상태에서 등떠밀려 뛰어드는 듯한 모양새를 노출하며 지역구에 출마를 하기전부터 점수를 까먹었다. 선거 막판에 ‘선거판의 제갈량’이라는 김종인 선대위원장을 영입했지만, 타이밍이 늦었다. 그가 아무리 선거전략에 뛰어나다고 해도 선거판을 뒤집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박근혜 캠프, 문재인 캠프를 오가는 통에 인식된 ‘철새 이미지’와 오버랩되면서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는데는 결과적으로 버거웠다는 게 중론이다.

전략도 미흡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공천과정에서 많은 후유증을 남기며 전력을 극대화하는데 실패했다. 공천에 탈락해 탈당을 감행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준표(대구 수성을) 후보, 김태호(산청·함양·거창·합천) 후보, 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을) 후보가 생환하고 전략적으로 공천한 곳의 후보가 상당수 낙선한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 통합당 공천이 뭔가 문제있었다는 쪽으로 귀결되는 게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가 15일 선거사무소 상황실에서 21대 국회의원선거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로부터 축하받고 있다. [연합]

여기에 선거 막판에 터진 김대호 후보(관악갑)의 세대비하 발언 논란, 차명진 후보(경기 부천병)의 ‘세월호 텐트’ 발언 논란은 통합당에겐 뼈아픈 비수로 돌아왔다. 두 후보에 대해 통합당 지도부는 ‘제명’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지만, 두 후보의 막말 논란 파장은 큰 악재였다는 평가다. 특히 차 후보의 발언으로 통합당 내부에선 “표가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는 탄식이 나왔는데, 정작 지도부가 제명 처리 전까지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일면서 당내 분열음까지 나왔다. 이때 수도권 선대위 관계자는 “김 후보, 차 후보의 막말 논란 이전에는 수도권에서 통합당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었는데, 논란 이후 표심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이걸 종합하면 통합당의 참패의 원인은 공천 실책과 결기 부족과 같은 리더십 부재와 일부 후보자들의 막말과 관련한 표심의 외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이게 다 일까. 통합당 참패 이유를 이것으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걸 알려면 20대 국회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이 패한 것은 중도층과 부동층의 마음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의 선거 성공방식은 통상 ‘텃밭’인 영남 외에도 중도층 표심이 위력적으로 발휘되는 서울과 수도권, 충청, 강원과 제주 등에서 선전하는 것이다. 통합당은 이번 선거에서 전통적 우호 지역인 영남은 싹쓸이 했지만, 서울 수도권과 충청 등에서 참담하게 졌다. 통합당은 특히 서울에서 강남 송파 서초 일부와 용산에서 승리했을 뿐 거의 전 지역을 민주당에 내줬다. 수도권 전체를 보더라도 총 121곳 중 민주당이 가져간 곳은 103곳이며, 통합당은 겨우 16곳을 챙겼다. 진보나 보수 진영에서 수도권을 이번 총선에서 최대 승부처로 여겨온 것을 감안하면 이곳은 정말 요지 중 요지였으나, 통합당이 표심에서 완패한 것이다. 전국 민심의 풍향계로 꼽히는 대전에서의 7석 모두를 민주당이 가져간 것도 주목할만하다. 지난 20대 총선에선 민주당 4석, 통합당 3석으로 엇비슷한 의석수 결과가 나왔었다. 균형과 견제를 대표했던 대전 민심 역시 전과 달리 집권여당에 일방적으로 편을 든 것이다. 이를 보면 결과적으로 통합당이 마지막까지 믿었던 중도층이나 부동층이 정권심판론보다는 국정안정론을 들어 여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중도층은 선거 과정에서 터진 통합당의 공천 논란과 막말 논란으로 민주당 쪽으로 쏠린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중도층은 이미 20대 국회에서 통합당에 ‘대안세력으로서의 미흡’ 쪽으로 도장을 찍었다고 본다. 그런 중도층을 선거에서 자기쪽으로 흡수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본다.

20대 국회는 사상 최대의 ‘동물국회’였다. 검찰 개혁, 공수처법, 선거법개혁 등의 패스트트랙안으로 여의도 정치는 실종됐었다. 고성과 쌈박질, 인신공격으로만 치달은 20대 국회는 정책 다운 정책을 내놓지 못한채 입법 기능을 상실했다. “싸우기만 하고 월급만 타간다”며 국민 여론은 싸늘했다. 물론 상당수의 책임은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몫이었다. 집권여당의 세련미가 부족하다보니 여의도는 매일 정쟁으로 얼룩졌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당에 대한 비판도 비판이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에 대한 비난 역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지인들이 내놓은 말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주로 중도층이라고 여겼던 이들이다. 한 지인은 “집권여당이 잘하는 게 없어 싫은데, 계속 발목잡기만 하는 야당은 더 싫다”고 했다. 다른 지인은 “여당이 정책면에서 미흡하다고 보는데, 그러나 야당을 생각하면 더 한심하다. 맨날 싸우고 욕하기만 하고 사사건건 트집만 잡고, 도대체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인 게 뭣이 있나. 콩가루 야당”이라고 했다. 또 다른 지인은 “적폐청산이나 이념 갈등에 몰두하는 여당이 잘못하면 그걸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하는데, 야당이 ‘미래’로 나아갈 생각은 않고 똑같이 헛발질하는 것을 보고 야당의 미래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그때 들은 얘기는 대충 이렇다.

16일 오전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총선 결과 관련 특별기자회견이 열릴 서울 여의도 국회 미래통합당 회의실에서 관계자가 “국민 뜻 겸허히 받들어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글귀가 쓰인 배경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연합]

이번 선거에서 대여투쟁에 앞장 서며 비전 제시 보다는 독설과 막말만을 주무기로 삼아왔던 후보들이 대부분 패한 것은 이런 그때의 중도층의 실망감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본다. 그때 인물의 이름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선거에서 패한 특정후보 이름을 거론하며 옛날 일까지 들추는 것은 잔인한 일일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견제와 균형을 바랐던 유권자들이 그때의 동물국회에 대한 잔상을 선명히 간직하고 있기에 그 책임의 주요 당사자로 여긴 통합당 쪽으로 큰 점수를 주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영광’ 뒤엔 혹독한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공룡여당’으로 재탄생했다. 개헌 빼놓고는 모든 게 가능하니 문재인정부의 국정드라이브는 탄력이 예상된다. 검찰개혁을 비롯해 여당이 바라는 각종 개혁입법 등은 순항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보면 오만과 자만에 빠지기 쉽다. ‘견제’가 소홀해지면 독선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큰 법이다. “민주당이 싫은데, 통합당은 더 싫다”는 일부 중도 표심의 진정한 뜻을 여권이 왜곡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게 많은 국민의 생각일 것이다.

통합당은 당장 몸살을 앓게 됐다. 선거 참패의 후유증을 봉합하고 새로운 보수진영 개편에 나서야 하는 과제를 안게된 것이다. 중도층의 외면을 초래한 막말 등의 투쟁 일변도를 벗어나 ‘보수의 품격’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충고는 그래서 나온다.

황 대표는 최종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대표직을 내놨다. 종로 선거에서도 이낙연 후보에 크게 패한 그는 15일밤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 패배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짊어지고 가겠으며 저는 이전에 약속한 대로 총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모든 당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황 대표는 퇴장하지만 이후의 통합당은 급속도로 내홍에 가까운 개편론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지도부 및 조기전대를 통한 야권개편에 나설 것으로도 예상된다.

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한뒤 무소속 출마를 통해 당선된 윤상현 후보는 총선 개표 방송에서 당선 유력 소감을 통해 “문재인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고자 했는데 오히려 유권자들께서 야권에 회초리를 드셨다”며 “이 점에서 야권개편이 정말 숙제로 됐다”고 했다. 보수 인사로 거론되는 전원책 변호사는 MBC 개표 방송을 통해 “기존 중진급이나 무소속 출마후 당선 인사가 아닌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했거나 아니면 참신한 인물을 발굴해 ‘한국판 마크롱’을 내세워야 보수가 살 것”이라고 했다.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총선. 그 행간에 있는 뜻이 하도 복잡해 정치는 또 시끌벅적하게 돌아가게 됐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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