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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얄타회담에선 38선도 냉전도 없었다

‘잃어버린 평화’.

50년대 타임지는 얄타회담을 이렇게 규정했다. 자유를 배신하고 공산주의와 타협했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극의 씨앗 역시 여기서 싹텄다.

전리품을 나눠 갖기 위해 비밀리에 크림반도의 얄타에 모인 미·소·영 승전국 지도자 셋은 저마다 다른 목표를 갖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세계 평화기구 창설과 세계 경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고, 처칠은 대영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유럽지역에서 영향권을 확보하려 했다. 스탈린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강대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동유럽에서 영향권을 확대하려는 게 목표였다.

자국의 이익을 놓고 치열한 협상전을 벌인 얄타회담의 8일간을 생생하게 복원한 세르히 플로히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얄타회담’(역사비평사)은 흔들리고 있는 현 전후 체제의 기원을 보여준다.

기밀문서와 공식 회의 자료, 회담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일기와 회고록 등 모든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실제로 얘기했을 법한 말을 추정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 현장감이 살아있다.

얄타회담의 주요쟁점은 세계평화기구, 즉 UN의 설립과 회원국 자격, 유럽 국경선, 전쟁배상금, 전쟁포로,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었다.

‘1국 1표’의 UN안전보장이사회의 투표권은 소련에게 3표를 주고 미국이 2표를 갖는 식으로 주고받기가 이뤄졌고, 동유럽국경선은 소련의 기여를 감안, 폴란드 동부를 소련에 넘겨줬다. 정부 구성방식은 매듭짓지 못해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미국은 대일전에 소련을 끌어들이는 대신 사할린 남부를 주고 만주에서의 영향력을 인정했다. 처칠은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권을 두고 스탈린과 '퍼센트 거래를 했고, 미국은 눈감았다.

저자는 얄타회담을 냉전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끄집어내야 얄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회담 참석자들은 이 회담이 끝이 아니라 생각했고 평화협상이 계속될 걸로 여겼다. 그래야만 회담에 임했던 사람들의 희망과 실망, 기대와 포기, 신뢰와 불신, 원칙과 타협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반도 분단과 관련, 얄타에선 38선을 경계로 한 분단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시아 의제와 관련, 루스벨트는 한국에 대한 20~30년간의 신탁통치를 제안하고 그 관리국으로 미국 중국 소련을 제시했으며, 스탈린은 신탁통치 기간이 짧을수록 좋겠다고 말했을 뿐이란 것. 세 국가가 신탁통치를 맡되 영국이 반발하면 영국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 의제는 단 30분만에 끝났다. 약소국 한반도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후 루스벨트와 스탈린은 권력게임을 이어가며 한반도의 영토를 자의적으로 잘라내는 논의와 합의를 이어갔다.

책은 회담의 내용은 물론 그 논의의 배경, 인물의 면면, 에피소드까지 세세하게 담아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얄타/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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