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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이 훼손한 대한문, 제모습 찾는다…월대 복원 착수
현재 덕수궁은 원래 모습의 1/3에 불과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지금 남아있는 덕수궁(경운궁 터) 영역은 원래 모습의 1/3 밖에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 민족 정기를 말살시키려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심하게 훼손했기 때문이다.

덕수궁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래 황제가 머물면서 제국의 헤드쿼터 역할을 하고, 구미주 외교사절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던 곳이다. 이 궁의 정문 대한문(원래 대안문:大安門)도 위엄의 상징인 월대(月臺)도 없앴다.

매국노들에 대한 청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른바 ‘토착 왜구’들이 아직도 일본 제국주의 만행에 대해 침묵하거나 옹호하고 식민사관의 역사교과서를 마치 정사인 양 부여잡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일본이 110년전쯤 훼손한 월대 복원에 나섰다. 최근 2~3년간 이어진 우리나라 문화재의 본래 모습 복원작업의 일환이다.

대한문의 이름은 당초 대안문이었고, 원래 위치는 현 위치보다 33m가량 태평로쪽으로 나와있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소장 김동영)는 대한제국 황궁 정문인 대한문의 면모를 되찾고자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덕수궁 대한문의 월대를 재현하는 설계를 이달 시작한다.

월대란 궁궐의 정전(正殿), 묘단(廟壇), 향교(鄕校)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이다.

월대는 덕수궁 대한문, 경복궁 광화문, 창덕궁 돈화문 등 궁궐의 정문과 덕수궁 중화전을 비롯하여 경복궁 근정전 등 주요 정전에 설치되어 건물의 위엄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궁궐 정문 구성의 필수 요건이다.

대한문(대안문)은 1970년 원래 위치에서 33m가량 서쪽으로 후퇴하기도 했다. 덕수궁관리소는 대한문의 원 위치를 찾아 옮기는 것이 어렵고, 인근에 있는 태평로와 시민들의 보행로 활용 등 여러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월대를 원위치에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여 원위치와 형태, 크기에 대한 철저한 원형고증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재현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1910년경 모습
1902~1903년 무렵 모습

1898년경 지어진 대안문은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불타지 않았지만 보수하면서 1906년에 문 이름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다. 대한문의 월대는 189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고 1900년에 월대를 새로 고쳤다는 기록(각사등록, 각부청의서존안)이 있어 적어도 1900년 전에 대한문 월대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문의 월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의해 훼손‧철거되었으며 현재는 월대 끝 부분에 있었던 석수(石獸, 짐승의 형상을 돌로 새겨 만든 것)만 현존하고 있다. 고종이 환구단이나 왕릉으로 행차할 때 사용하였고, 1910년 대한제국의 명운이 다하는 마지막까지 궁궐의 정문에서 격동했던 근대사의 한가운데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던 만큼 월대의 재현은 일제의 의해 훼손되고 지워진 우리의 역사를 되찾고, 오늘날 우리들의 품에 되살리는 의미를 가진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이달부터 7월까지 설계를 마치고 나면,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내년까지 대한문 월대 재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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