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읽기] 민망하고 미안하다

막장드라마의 클리셰는 뻔하다. 심성 곱지만 가난한 여자주인공, 재벌2세나 전문직 종사자인 훈남 남자주인공, 늘 악역이기만 한 시어머니, 말리는 게 더 미운 시누이. 여기에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고부갈등, 폭력, 음모가 겹친다. 마지막 몇 회 권선징악의 짜릿함 때문에 욕하면서 볼 수밖에 없다.

총선이 눈앞이다. 현재 원내 1, 2당은 순서는 모르겠지만 다시 원내 1, 2당이 되는 게 100%다. 거대정당이 비례정당을 놓고 벌이는 막장드라마가 최대 관전포인트다. 막장드라마의 유해는 4·15총선 위성비례정당을 둘러싼 정치권의 막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관전하는 느낌을 뭐라 해야 할까. 민망하고 미안하다.

#민망하다

직전 20대 총선의 명운을 가른 상징적인 사건인 새누리당의 ‘옥쇄 들고 나르샤’는 요즘 벌어지고 있는 비례용 정당을 둘러싼 논란에 비하면 애교수준이다. “현재 전개가 몹시 민망하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민망한 상황에 빠지고 있다. 드라마는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터라 줄거리를 따로 얘기하지 않겠다.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했던 군소정당은 자신들의 대표가 비례대표에서 배제되자 민주당 행태를 “아베보다도 더 나쁜 짓”이라고 하니 민망하다. 미래한국당 대표에서 물러나면서 한선교 의원이 ‘어린왕자의 꿈’운운하는 데 어린왕자에게 정말 민망하다. 어디서 들어본 든 한 작명인 열린민주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또다시 소환하고 적자논쟁까지 벌이는 건 민망하기 그지없다.

막장드라마는 그래도 등장인물 절반정도는 ‘좋은’사람이다. 선이 악을 이긴다는 사실을 배반하지 않는다. 비례정당발 드라마는 막장의 기본공식도 갖추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19 재난와중이다. 시청자인 국민이 채널을 돌리거나 아예 TV를 끌 태세다.

#미안하다

이번 총선에는 선거사상 가장 젊은 새내기 유권자가 투표장으로 향한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연령이 낮아지면서 18세인 53만여명이 생애 첫 투표권을 갖게 됐다. 투표는커녕 제대로 된 개학을 걱정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유권자가 14만명에 달한다.

민주시민으로 첫 투표에 나서는 그들에게 미안하다. 그들이 투표장에서 마주할 정당은 ‘민주’ ‘한국’ ‘시민’ ‘통합’ ‘미래’ 등 좋은 말들로 조합돼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첫 투표행사에 앞에 펼쳐진 게 고작 막장드라마란 게 민망하고 미안하다.

금배지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고, 불체포 특권, 발언 판결의 원외면책 등 입법부의 구성원으로 권한이 막강하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가 없어 잘하든 못하든 4년간 막강한 힘을 갖춘 자리는 보장돼 있다.

막장드라마 앞에서 투표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도 이해된다. 그래도 투표장에서 1표는 민주시민만의 신성한 권리다. 막장드라마를 심판하고 끝내기 위해서라도 코로나19를 뚫고 투표장에 가야만 한다.

이런 권유를 하다 보니 선배 유권자로서 18세 새내기 유권자에게 거듭 민망하고 미안하다. 그래도 민망함과 미안함을 무릅쓰고 다시 한번 투표를 권할 수밖에 없으니 정말 민망하고 미안할 뿐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