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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국회의원 정년제는 왜 없나요?
‘세비삭감’ 청원 등장 속 지인 페북 글에 만감이 교차
코로나19 위기 속 ‘정치인 불신시대’가 새삼 화제로
‘의원 세비 반납’ 청원 8일만에 동의 30만명 돌파해
여당인 민주당 “의원세비 50% 자발적 기부” 움직임
“월 500만원씩 석달치 1500만원 기부” 실천에 주목
일각 “국회의원=무위도식 이미지 벗는게 더 중요해”
“근본 반성 없으면 국회의원 정년제 얘기도 나올 판”

#. 평소 ‘형’이라 부르는 한 지인이 며칠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정치 화두였다. 그는 “그동안 정치인(국회의원) 정년제도가 생겼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요즘들어 더욱 그러하다”고 썼다. 그는 “웬만큼 권력 잡고 놀았으면 이제 그동안 국민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보상으로 지역 봉사활동도 하고, 정치하지 말라고 멘토링도 좀 하고, 집 앞 청소도 좀 하고, 손주도 봐주면서 곱게 늙어가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담긴 글에서 그가 누구를 겨냥해 이런 소리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노탐의 정치인을 지칭한 것일수도 있고, 천년만년 권력을 놓지 않고 연연하는 정치인 세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일수도 있겠다 싶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평소 점잖은 그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이번 총선(4월15일) 정국에서 (특정이든 전체적이든) 정치권에 대해 절망에 가까운 실망감을 느낀 것 같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었다.

#. 내 친구의 경우는 좀더 노골적이다. 1년 365일 온순한 녀석인데, 정치 얘기만 나오면 꼭 입이 험해진다. 그는 정치인 혐오자다. “국회의원은 다 저질이야. 의원 개별적으로 보면 다 똑똑한데 모아놓으면 다 저질이야. ” 그의 정치인에 대한 정의는 늘 이렇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 하고 결국 제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돼 싸우잖아. 우리 세금으로 그들 배불려주는 게 너무 아까울 정도야.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무보수 봉사직으로 했으면 좋겠어. 왜, 유럽 어딘가 그런다잖아?”. 그렇게 결말을 내고야 마는 게 녀석의 정치에 대한 개똥철학이다.

정치인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야 다를 수 있지만, 위 두 사례는 꼭 내 주변의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 불신시대, 정치인 불신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들 나오는 말들일 것이다. 너그러움과 이해의 폭이 좁아지고 세상 인심이 각박해진 탓이겠지만, 정치 불신시대는 정치인 스스로 초래한 측면도 크다. 지난해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정치인 막말 공방, 패스트트랙 정국에서의 여야의 진흙탕 싸움, 그리고 올해 총선을 앞두고 불거진 협잡정치, 불복정치 논란들 속에서 국민의 정치무대 혐오증을 키운 것은 정치인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운데)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주민 최고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

이런 가운데 ‘국회의원 월급 반납 또는 삭감 건의’ 국민청원이 30만 이상의 동의를 받아 세간의 시선을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국민들을 위해 국회의원들의 월급반납 또는 삭감을 건의한다’는 제목으로 올라온 해당 청원은 20일 오전 7시 현재 30만2424명의 동의를 받았다. 지난 12일 이 청원은 올라왔고, 20일을 기해 30만명 동의를 돌파한 것이다. 통상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청와대는 이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하기에, 해당 청원이 마감되는 다음달 11일부터 한달 이내에 청와대는 답을 내놔야 한다. 주목을 끈 것은 청원 배경이다. 청원인은 청원을 올리면서 “국민들은 (코로나19로) 서로가 힘든 상황을 극복해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겠다고 힘을 보태는데 이번이야말로 국회의원들의 자진 월급반납 또는 삭감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기회로 삼고 조금이라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착한 임대인, 천마스크 만들기, 학생들의 기부, 자원봉사자 등을 예로 들면서 국회의원들의 반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서 십시일반 전력을 다해 돕고 있는데,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은 정작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는 간접적인 비판이었다. 청원인은 “작년 몇달 간 국회 문을 열지 않아 일을 안한 것과 다름없는데도 국회의원들은 월급을 다 받아 갔다”며 “일반 직장인이 오너와 마음이 안 맞는다고 수개월을 출근도 안하고 해결할 일을 남기면 당연히 월급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쌈박질을 하면서 무위도식했는데도 월급을 다 타갔으니, 이번에 국가재난사태를 맞이해 돈을 토하라는 뜻이다.

이 청원이 폭발적인 동의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원(76만여명 동의), 신천지 강제해체 청원(132만여명 동의), 문재인 대통령 탄핵 촉구 청원(146만여명), 문재인 대통령 응원 청원(135만여명 동의)에 비하면 호응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관련 댓글 내용을 살펴보면 이슈의 폭발성이 간단치 않음을 짐작케한다. 대개 국회의원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낸다. “근래 들어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국민청원“에서부터 “국회의원을 돈 버는 직업이 아닌 봉사의 자리로 바꿉시다. 그러면 싸우고 던지고 치고 박고 안싸우겠지요”, “국회의원 연봉이 너무 세요. 유럽 어디는 최저임금으로 한다나, 명예직으로 한다나 그러는데…. ○레기들 거릅시다”까지 무위도식 의원들에 대한 비판 일색이다. “진짜 강성노조보다 더 한 것이 국회의원들이다. 비슷하긴 한데 이들은 협의나 예고도 없이 그냥 출석 안한다. 그러면서 일은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의원도 이 참에 성과급을 도입합시다” 등의 조롱 글도 넘쳐난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

개인적인 의견을 내자면, 나는 ‘국회의원 세비 반납 또는 삭감’ 강제에는 반대한다. 정치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실종에 오죽 실망했으면 이런 청원이 등장했겠느냐는 공감과 정치인집단이 얼마나 나쁜 집단으로 비쳐졌으면 이런 댓글이 넘치는지 그 이해와는 별도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월급제’인 의원 세비를 강제로 회수하는 것은 반(反)민주주의와 다름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여당인 민주당에서 이런 국민들의 불만에 대해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 주목된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인영 원내대표는 전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의원 세비 50% 기부 운동 등을 비롯해 민주당은 최선을 다해 코로나19 국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헌신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안은 현재 의원들의 중지를 모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석달치 월급의 50%로 1인당 1500만원쯤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의원의 월급이 통상 1000만원 정도이므로, 한달에 500만원씩 3개월이면 1500만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는 세비삭감이나 반납이 아니라 성금이므로 자발적으로 참여할 분을 집계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제’가 아닌 ‘자발’을 강조함으로써 ‘의원 세비 반납’ 국민청원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민주당의 이같은 ‘자발적인 세비 성금 모금’은 실현가능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앞서 설훈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국회 최고위원회에서 “(코로나19 앞에선) 국회도 고통 분담에서 예외일 수 없고, 국회의원 세비 절반을 취약계층 지원에 사용해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이해찬 대표는 “세비를 절반씩 모아 취약계층을 지원하자는 이야기에 다른 최고위원들이 동의하면 원내대표단에서 의원들의 의견을 듣도록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바통을 이어 이 원내대표가 ‘세비 50% 기부 운동’ 열기를 띄운 것이다.

민주당에선 세비 갹출 기부운동이 이렇듯 이번 국민청원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최소한 코로나19와 관련한 국회의원들의 도덕적 의무 불이행 논란에 대한 여론을 의식하는 흐름은 확연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코로나19라는 절대위기 앞에서 격앙된 여론이 정치권을 향해 폭발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여당 관계자는 “국민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시선이 점점 싸늘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정치권이 잘 인지하고, 그 근본 이유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의원의 자발적 세비 갹출 모금 운동을 지켜봐달라”고 했다.

세비를 걷어 성금을 내겠다는 여당 국회의원들의 일부 공감대가 전체로 번져 의원 기부활동이 활발해질지, 아니면 그냥 불만 지폈다가 이런 논의가 쏙 들어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국회의원=무위도식’이라는 주홍글씨를 정치권이 하루빨리 걷어내야 하는 숙제는 발등의 불이 됐다는 게 중론이다. 1년내내 쌈박질만 하느라 일은 안하고 월급은 꼬박꼬박 챙기는 의원, 지역구 한번 오지 않다가 선거때만 뻔뻔한 얼굴을 들이미는 의원, 한 표를 더 얻기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의원, 이런 국회의원 이미지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다음엔 ‘의원 정년제’라는 국민청원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맨 위에서 거론한 지인은 ‘의원 정년제’를 주장하면서 이런 글도 내놨다. “사람들이 그러더라.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일류는 대기업에 가고, 이류는 공무원 하고, 삼류는 정치인 한다더라’고.” 알다시피 잘 나가는 대기업에 다녀도, 남에게 아쉬운 말을 상대적으로 덜하는 공무원을 한다고 해도 때가되면 피할 수 없는 게 ‘정년’이다. 지인 말대로라면 일류도 이류도 아닌 삼류 집단의 정치인만 유독 천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부 정치인에 해당하겠지만 말이다. 욕심과 탐욕의 정치인이 장수하는 세상이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 나 역시 이렇게 같이 외칠지도 모르겠다 싶다. “옳소. 국회의원 정년제 도입합시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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