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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정치풍자, 섹드립 훌훌 다 벗고…” 한때 팬으로서의 자니윤 추모
한국 ‘토크쇼의 모태’ 자니윤 인생 되돌아보니…
정치 풍자·야한 농담으로 80년대말 안방 장악해
스탠드업 코미디 대부로 원조 한류스타로 올라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연…관광공사 감사 역임도
한때 정치무대 복판에 서 ‘보은인사’ 뒷말 듣기도
영광·부침 다 뒤로…공수래공수거 인생 실감케
한국에서 처음으로 미국식 토크쇼 형태의 코미디를 선보였던 코미디언 자니윤(한국명 윤종승) 씨가 지난 8일 오전 4시(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그는 1989~1990년 ‘쟈니윤쇼’를 진행했다. [연합]

20대 초반, 그에게 반했다. 거침이 없고 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말투는 어눌했다. 그가 단어 하나 하나를 꺼낼땐 느끼한 버터냄새가 진동했다. 그런데 그게 싫지는 않았다. 현직 배우 등 내로라 하는 출연진 앞에서의 걸쭉한 입담이 인상적이었다. 해학과 함께 간혹 터져나오는 섹드립(야한 농담)이 압권이었다. ‘거리낌’이라는 단어는 아예 모르는 것 같았다. 여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단박에 그의 팬이 됐다.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클로징 멘트에 매번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최초의 토크쇼, 그것도 밤 11시대 늦은 시간에 진행된 토크쇼가 한때 40%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이 나온 것은 나 같은 팬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획기적인 토크쇼를 선보이며 시청자에 웃음꽃을 피게 하던 ‘자니윤 쇼’의 주인공, 원조 한류스타로 평가되는 이, 바로 코미디언 자니윤 얘기다. 이런 자니윤(한국명 윤종승)이 별세했다. 향년 84세.

11일 연예계 등에 따르면, 치매 증상 등으로 지난 2017년 LA 근교의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던 자니윤은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갑작스럽게 혈압이 떨어져 병원에 입원했고, 나흘뒤인 8일 새벽 4시께 별세했다고 한다.

생전 자니윤과 인연을 맺었던 이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MC 배철수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Rest in Peace(평안한 안식을)’이란 글귀와 함께 고인을 추모했다. 코미디언 이홍렬은 고인에 대해 “스탠드업 코미디로 한국의 위상을 떨치신 분”이라고 회고하며 “좋은 곳에 가셔서 편안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자니윤 쇼에서 콤비로 출연하며 자니윤과의 각별한 기억을 갖고 있는 가수 조영남은 한 언론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니윤은) 한국 엄숙주의를 넘어선 혁신적 쇼를 이끌었던 분”으로 평가했다.

이처럼 한동안 잊혀졌던 자니윤 사망 소식에 연예계의 추모 열기가 뒤따르면서 고인의 생전 삶도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토크쇼’라는 장르를 한국에 도입했던 자니윤은 미국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이다.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간 자니윤은 처음엔 파트타임 가수, 뮤지컬 배우로 시작했다. 출발은 초라했다. 탈출구가 필요했던 그는 어느날 업소에서 마이크 하나로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전향했고, 한 기획사에 몸을 담게됐다. 운이 좋았다. 그 기획사에 소속된 이가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였던 ‘쟈니 카슨’이었다. 그렇게 쟈니 카슨쇼에 출연하게 됐다. 어디까지나 쟈니 카슨을 빛나게 하는 보조 역할이었지만, 그 기회를 십분활용했다. 자니윤의 정치 풍자와 성적인 농담이 인기를 끈 것이다. 당시 자니윤의 잠재력을 인정한 쟈니 카슨은 자니윤을 자주 출연토록 힘을 써줬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자니윤은 동양인 중 자니 카슨쇼에 두번째로 최다 출연한 게스트라는 기록도 세웠다. 원조 한류스타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 ‘자니윤 쇼’를 선보이게 된 것은 88올림픽이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그는 ‘서울 88올림픽 기념 행사’에 참가하게 됐다. 그때 브룩 쉴즈, 저메인 잭슨 등 해외 유명인사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것이다. 자신의 할리우드 인맥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당시 한 방송PD를 만나게 됐고, ‘한국판 쟈니 카슨쇼’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하게됐고, 이에 그의 이름을 딴 자니윤 쇼가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자니윤 쇼에 출연한 적이 있는 배우 전원주는 언젠가 한 방송에서 자니윤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대본을 봤더니 자신의 애드립, 유머를 모두 적어놔 대본이 새까맣더라. 자니윤은 엄청난 노력파였습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미국식 토크쇼 형태의 코미디를 선보였던 코미디언 자니윤(한국명 윤종승) 씨가 8일 오전 4시(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별세했다. 사진은 미국 자니윤쇼에서 밴드 멤버로 활동한 김영수 씨가 2017년 12월 요양중이던 자니윤 씨를 찾아가 같이 사진을 찍은 모습. [연합]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자니윤이 정치와도 무관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점이다. 쇼 무대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정치무대에도 선을 보였던 것이다.

자니윤의 특기 중 하나는 정치 풍자였다. 쟈니 카슨쇼에서 그가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종차별, 성차별 등의 정치적 이슈에 대한 날카로우면서도 가벼운 정치 풍자였다. 한국에서 자니윤 쇼를 진행할때도 그가 정치풍자에 상당한 의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군사정권 시대의 잔재가 남아있던 때, 정치풍자는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성적인 농담 위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치 거물에 대한 풍자도 시도했지만, 편집때 잘리기도 했다는 말도 나왔었다.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니윤의 이 시도가 의미가 있었던 것은 당시 코미디계를 되돌아보면 대충 짐작이 된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몸으로 웃겨야 했던 슬랩스틱 코미디를 지나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성대모사 등이 일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면서 약간의 정치인 풍자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언어유희성이 강했다. 이런 시점에서 자니윤은 토크쇼 영역에서 정치풍자를 염두에 뒀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6·29 민주화 선언이 나온 후라고 해도 군사정권의 흔적이 남아있던 때라 과감한 정치풍자가 허용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자니윤이 정치무대에서 직접 뛰기도 했다는 것이다. 토크쇼에서의 만족할만한 정치풍자 시도가 무산되면서 정치 쪽으로 시선을 돌린 게 아닌가 하는 평가도 있다.

자니윤은 지난 2012년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서 재외국민본부장을 맡았다. 자니윤은 지난 2007년 야당의 대선후보였던 박 후보가 로스엔젤레스를 방문했을때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둘의 인연이 공개된 적은 없지만, 개그를 좋아하며 본인 역시 썰렁개그를 하곤 하던 박 전 대통령의 스타일과 코미디언 자니윤의 연결고리에서 이를 찾는 시각이 많다. 이후 자니윤은 박 후보를 계속 지지했다. 이명박정부였던 2009년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샌프란시스코 방문 때는 자니윤이 교민행사의 사회를 봤다고 한다.

이런 자니윤은 지난 2014년 8월 한국관광공사 감사에 임명돼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집권 2년차 때였다. 당시 야당에선 회계장부도 볼 줄 모르는 이를 관광공사 감사로 앉혔다며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전형적인 보은인사”라고 맹공을 가했다.

이런 가운데 자니윤을 둘러싼 설화도 나왔다. 지난 2014년 10월 한국관광공사 국정감사에서 설훈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자니윤을 향해 “인간은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지는 법인데 79세면 쉬셔야 하는데 일을 하려 드나”고 했다. 보은인사에 대한 비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설훈 의원은 아예 “노익장이라는 말을 아나? 미국에 오래 계셨으니 모를 수도 있다. 1936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79세다. 정년이라는 제도를 왜 뒀겠나”라고까지 했다. 당장 이는 ‘노익장 폄하 발언’ 논란으로 이어졌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의 권은희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81세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점을 아는가. 설훈 의원은 노익장 폄하 발언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교문위원장직을 사퇴하라”고 반발하면서 정치 공방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렇듯 자니윤은 2016년 6월 건강문제로 감사직을 그만두기 전까지 정부의 보은인사 얘기가 나올때마다 거론된 이였다.

미주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고인의 동생 윤종무 씨는 “형님은 평소 ‘많은 사랑을 받아서 항상 행복했고 감사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입힌 일이 있었다면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했다. 고인의 마지막 뜻이 담겨 있는 이 말에선 자니윤의 영광과 부침의 생전 삶과 어우러져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라는 인생 진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분주하면서도 고독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자니윤의 지난 인생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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