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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난 음악하는 직장인, 회식보단 칼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570년 창단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에서 동양인 여성이 처음으로 악장이 됐다. 2018년 5월, 당시 26세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은 이렇게 ‘최초’의 기록을 안게 됐다.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모두 세 명. 이지윤을 제외하면 모두 50대다.

보수적인 유럽 음악계에서 주목받은 것에 대해 이지윤은 최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선함이 어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금씩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시기에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오케스트라 내부에선 더 인터내셔널한 면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단원들은 제가 종신 임명된 후 경험 없이 들어와 아무런 편견 없이 시작한 점이 플러스가 됐다고 이야기해 줬어요.”

[금호아트홀 제공]

이지윤은 하지만 “처음에는 겁을 많이 먹었다”며 “경험 많은 분들 사이에서 아무 경험 없이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격 자체가 실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원들에게 도와달라 요청했고, 실수를 하면 실수를 인정했다”며 “연주를 잘 하는 건 당연하고, 악장으로의 역할, 수십년간 일을 한 분들과의 인간관계에도 신경을 쓰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악장으로 임명된 이후엔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관심이 모아졌다. 특히 다니엘 바렌보임의 전적인 신뢰를 받은 신인이라는 점에서 주목도 역시 높아졌다. 세계 음악계의 권력인 바렌보임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 28년째 이끌고 있다.

“처음 뵈었을 때는 옆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어요. 일흔 일곱, 여덟의 나이에도 눈동자는 열여섯 소년 같았어요. 그렇게 빛나는 눈은 드물게 본 것 같아요.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많이 말씀해주셨어요. 처음 지휘해보는 것처럼, 처음 열어보는 곡처럼 연주해야 한다고요. 음악적인 견해를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이 놀라워요. 음악가로서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금호아트홀 제공]

이지윤은 국내 음악계에서도 새로운 세대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힌다. 2004년 금호아트홀에서 영재콘서트로 데뷔했고 이후 칼 닐센 콩쿠르 우승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무대에 오른 이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파이널리스트’에선 12명의 참가자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았다. 당시 그는 우승자(임지영)도 준우승자(올렉시 세미넨코)도 아니었다.

이지윤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솔리스트의 삶에 대해 털어놓았다. ‘천생 솔리스트’로 보이던 그가 오케스트라를 통해 여러 연주자와 ‘함께하는’ 길을 선택한 것도 솔리스트로의 삶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올해에는 오케스트라에서의 삶과 솔리스트로의 삶을 병행하는 ‘멀티 페르소나’가 된다. 금호아트홀 연세의 상주 음악가로 선정돼 지난 16일 첫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총 4차례에 걸쳐 독주회를 연다. 그는 “오케스트라에선 내 개성을 줄여야 하고, 솔리스트는 나만의 특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며 “양쪽을 오가며 연주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를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리사이틀에선 이지윤의 개성이 보다 강하게 보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호아트홀 제공]

“독일에서 느꼈던 에너지를 한국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한 이야기처럼 지난 독주회에서 그는 압도적이고 열정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대중적이진 않지만 ‘바이올린을 가장 바이올린답게 연주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지윤의 색깔을 잘 들려주는 버르토크, 야나체크, 드뷔시 등을 선곡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왜 그렇게 연주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라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들만 골라서 했다”고 말했다.

연주를 마친 이지윤은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 악단 생활을 한다. 악단에서의 일이 없는 기간인 5월, 8월, 12월에 한국을 찾는다.

“저 역시 바이올린을 하는 직장인이에요. 일 년에 35주 정도 일을 하는데, 리허설이 1번에 평균 3시간씩 연습을 해요. 휴일과 공휴일도 일을 하는 패턴이고요. 대부분 월요일, 수요일에 휴일이 많아요. 다른 직장인과 달리 주말이 반갑지 않은 사람이에요. 연주 끝나면 회식보다는 무조건 칼퇴예요. 눈 감았다 뜨면 다들 없어져요. 빨리 집에 가야 하죠.(웃음)”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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