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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하단/버스차장, 고학력·고임금이었다?

‘70,80년대 여성을 부르는 계층 용어로 ‘삼순이’란 말이 있다.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60년대 흔한 이름인 순이는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저널리스트 정찬일은 근대화시기, 계층의 밑바닥을 형성했던 “삼순이’에 주목, 이들의 ‘전성시대’를 복원해낸다.

식모는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가장 많은 여성이 선택한 일이었다. 가부장제에서 집안에만 있어야 했던 여자들은 바뀐 시대와 가난에 입 하나 덜기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남의 집으로 들어가 ‘하녀’가 됐다. 월급은 커녕 먹고 자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는데, 인권 유린은 비일비재했다. 임금노동자라기 보다 봉건사회 노비 정도로 인식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 가구의 30퍼센트가 식모를 뒀다.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최빈국에서 어떻게 가능했던 건 인건비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으며, 식모자리가 없어 자살하는 사건이 사회면을 장식했다.

버스안내양은 60,70년대 전성기를 이뤘다. 이들의 저임금과 근무시간은 악명높았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형태로 근무하는 날은 18시간 콩나물시루 버스에 매달렸다. 1981년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수면시간은 4시간, 안내양의 40퍼센트는 쏟아지는 졸음과 피로를 이기기 위해 카페인 성분의 각성제를 복용했다. 그러나 1928년 처음 버스가 등장할 때만해도 버스안내양은 학력도 임금도 높았다. 1934년 모집공고를 내지 않았는데도 50명 채용에 900명이 지원해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YH무역 여공사건은 당시 ‘공순이’들의 참담한 실상을 보여준다. 밤10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에서 받은 보름달 빵을 고향에 보내려 생각해낸 ‘빵계’, 지친 몸을 누이는 1.5평짜리 벌집 등 저자는 당시 신문과 연구자료, 인터뷰 등을 통해 생생하게 담아냈다.

‘현대판 삼순이’‘미래의 삼순이’에 대한 논의의 단초를 열어간 점이 눈길을 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삼순이/정찬일 지음/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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