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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봉준호 감독과 코리안 스탠다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8백만 관객(15일 기준)을 넘겼다.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빛나는 왕관을 쓴 효과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수치다. 사실 해외영화제 수상작이 작품성은 인정받아도 대중성까지 가져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작품성과 대중성은 콘텐츠에 있어서 다른 말로 하면 ‘깊이’와 ‘넓이’로 얘기될 수 있다. 깊이가 있는 작품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일종의 ‘진입장벽’이 있기 마련이다. 반편 넓이가 있는 작품은 많은 대중의 폭넓은 공감대를 가져가는 대신 어떤 일관된 깊이를 갖는 게 쉽지 않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봉준호 감독은 일찍부터 이 쉽지 않은 ‘깊이’와 ‘넓이’를 추구해왔고 그 성과도 내왔다. <살인의 추억>은 스릴러 장르로서는 넘기 힘든 525만 관객을 넘어섰고, <괴물>은 역시 흥행이 쉽지 않은 괴수물 장르로 1천만 관객을 넘었다. <마더>도 불편한 모성애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로 290만 관객을 동원했고,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도전작으로 역시 930만 관객 수를 기록했다. <설국열차>를 통해 세계적인 감독의 지명도까지 갖게 된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로 넷플릭스를 통한 전 세계 동시방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즉 하나 같이 대중적인 성공이 쉽지 않은 장르를 시도했지만, 흥행에 성공했고 또한 ‘봉테일’, ‘봉장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와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또한 봉준호는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역시 쉽지 않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감독이기도 하다. 놀라운 일이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하나 같이 한국적인 특수한 상황과 정서를 담아낸 작품들이다. <살인의 추억>이 군부 독재 시절의 그 살풍경한 시대적 풍경을 배경으로 했다면, <괴물>은 괴수물을 가져와 이른바 ‘재난 공화국’이라 불리기까지 한 콘트롤 타워 부재의 한국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마더>는 어떤가. 한국사회의 압축성장의 이면에 담겨진 엇나간 핏줄 사회의 살벌함을 빗나간 모성애로 섬뜩하게 담아내지 않았던가. 물론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설국열차>는 우리만이 아닌 자본화된 세상을 머리칸과 꼬리칸으로 대변되는 무한궤도 위의 열차로 표상화해 그려냈지만, <기생충>은 반지하와 지상 그리고 지하 같은 공간으로 나뉘어진 한국 사회의 계급적 풍경과 그들의 기생관계를 신랄하게 풍자해낸 작품이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한국이라는 ‘로컬’의 특수성을 담아낸 작품들이지만, 이들 작품들이 ‘글로벌’하게 통하게 된 이유는 뭘까. 그건 앞서 말한 ‘깊이’의 추구가 만들어낸 집요한 디테일이 구축해낸 ‘보편화’라고 해석된다. 나라와 언어와 국적이 달라 저마다 사는 삶의 모양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자본화된 세상’의 일관된 풍경들이 봉준호 감독의 집요한 디테일 속에서 글로벌한 공감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 세계를 통해 ‘코리안 스탠다드’를 다시금 그려본다는 건 어딘지 엉뚱한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한때 우리가 취했었던 압축성장이 외적 성장으로서의 ‘넓이’만 추구하다 정적 내적 성장으로서의 ‘깊이’를 잃어버림으로서 거품이 터지고, 그간 성장이 짓밟은 삶 전반의 민주화를 요구하기 시작한 우리의 현재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그리 엉뚱한 상상만은 아닐 게다. 삶의 넓이와 함께 깊이도 함께 추구하고, 민족이나 국가에 얽매여 있던 로컬의 삶이 글로벌 스탠다드와도 조화를 이루는 것. 봉장르가 추구해온 일련의 노력들이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할 새로운 코리안 스탠다드가 아닐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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