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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판 러다이트’…포퓰리즘에 빠진 정치권
크레인·숙박-승차공유·원격의료
기득권 저항에 ‘새로운 길’ 실종
정치권 표만 의식 ‘혁신은 남일’


#. 1811년 3월. 영국에서는 멀쩡히 돌아가던 직조공장 기계들이 부숴지고 멈춰섰다. 해머를 든 50여명의 노동자들이 200여대의 기계를 잇달아 파괴했다.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이 불러온 영국의 유례없는 경기침체와 실업에 대한 분노가 자신들이 일하는 공장 기계를 희생냥으로 표출한 것이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이런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상원 의원 바이런은 “러다이트의 격분은 어려운 환경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며 러다이트 운동에 손을 들어줬다. “증기기관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1000명 노동자 가정의 빵이 강탈된다”는 선동 구호가 먹혀들어갔다. 대중의 분노는 경기침체와 실업의 원인인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이 낳은 잘못된 정치와 외교가 아닌 눈 앞의 발전과 혁신으로 향했다.

일자리 감소를 우려해 기계를 부쉈던 러다이트 운동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연되고 있다. 승차공유, 숙박공유, 원격의료, 무인 타워크레인 논란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이 와중에 정치인들은 표가 되는 노조나 기존업계 조직표 눈치를 보면서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심지어 이들을 대신해 발전과 변화를 막는 법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신(新)러다이트 운동엔 여야가 따로 없다. 5일 국회에 따르면,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고도로 선회하는 타워크레인의 운전석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건설기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드론이 하늘을 날며 택배까지 배달하는 시대에 ‘무인 크레인’만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에는 국토위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 등 여야 의원 11명이 이름을 올렸다.

송옥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또 다른 법안은 아예 노동조합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담았다. 송 의원은 3톤 미만의 타워크레인 건설기계조종사 면허는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기술자격 취득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사실상 무인 크레인이 이 땅에서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셈이다.

승차공유 서비스는 대책이 없는 ‘아노미’ 그 자체다. 카카오모빌리티와 택시 4단체는 5월에 공동 발표한 성명에서 “사회적 대타협 기구 합의 후 현재까지 정부와 여당 어느 누구도 이를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플랫폼 택시 출시와 관련해 어떠한 회의도 공식적으로 소집한 바 없다”고 했다. 중재자를 자처했던 정부와 정치인들을 비판한 것이다.

여당과 국회는 앞서 카카오모빌리티와 택시4단체 간 ‘카풀 시간제한’과 ‘플랫폼 택시’를 골자로 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두 단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후속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택시 서비스의 변화를 원했던 소비자의 기대는 택시조합들의 시위 앞에 무력화됐다. 쏘카를 운영하는 이재웅 대표는 “혁신의 싹을 잘랐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국형 에어비엔비, 즉 숙박 IT플랫폼도 마찬가지 신세다. 숙박공유 플랫폼을 추진했던 신생기업 10여곳은 규제 앞에 셔터를 내렸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나섰지만, 기존 숙박업계 반발에 해외 이용객 한정이라는 시장제한 꼬리표만 더 늘었을 뿐이다.

원격의료도 기존 의료계 반발에 길을 잃었다. 대한상의는 ‘미국ㆍ일본ㆍEU 등 경쟁국보다 불리한 신산업분야의 대표규제 사례’ 보고서에서 의료분야는 기득권 반대로 인해 세계 1위 헬스케어 의료기기 스타트업이 국내 시장을 포기하고 있으며, 원격의료법은 시범사업만 20년째 계류중이라고 했다. “한국은 기득권 저항, 포지티브 규제, 소극행정 등 3대 덫에 갇혔다”는 것이 대한상의의 진단이다. 혁신을 통한 성장은 외신면에만 존재할 뿐이다.

정부는 사실상 기존 업계의 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이재웅 쏘카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 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타다’ 서비스로 택시업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이 대표를 겨냥해 “무례하고 이기적이며 오만하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사기업을 겨냥해 공개적인 압력을 가한 셈이다. 이 와중에 정부가 스스로 추진했던 ‘인터넷 은행’은 용두사미로 전락했다. 신규 사업자의 진입은 고사하고, 있던 인터넷 은행조차도 ‘금산분리’라는 20년전 외환위기 시절 규제에 갇혀, 있는 돈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대한민국의 신러다이트 운동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대중과 기존 사업자, 그리고 이들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의 합작품이라는 게 중론이다.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는 “일반 여론은 새로운 것이 아무리 좋다해도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걸린다”며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들도 결국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최정호ㆍ홍태화 기자/th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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