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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국방부의 “분석중”과 육군의 “검토중”
육군본부는 지난 13일 한 방송에서 이종명 의원과 관련해 영웅조작설이 제기되자 수뇌부가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5ㆍ18과 연계해 이슈화가 예상되므로 육군의 공식 입장표명은 5ㆍ18 이후로 최대한 연기하라”, “기자 질문에는 ‘검토중’ 스탠스를 유지하고 이슈가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검토중’이란 표현을 군 당국이 어떤 상황에 쓰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사실은 영웅조작설 의혹이 불거진 지 불과 사흘만인 지난 16일 언론 취재에 의해 추가로 밝혀졌다. 그 이후로 육군 측은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십 수회가 넘도록 “검토중”이라는 답변을 반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민들 사이에서 이런 육군의 대응은 소통이 아닌 ‘불통’의 전형적 사례로 꼽혔으나, 육군 수뇌부의 입장에서는 지침을 충실하게 이행한 완벽한 임무수행의 대표적 사례로 여겨진 것으로 보인다. “검토중”이라는 답변만 십 수회 반복한 군 당국자는 이어진 수 차례의 브리핑에서도 관련 질문에 “검토중”이라는 답변을 반복 중이다. 육군이 “검토중”이라는 영웅조작설에 대한 공식 입장은 의혹이 불거진 지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방부는 지난 4일과 9일 북한이 시험발사한 단거리 발사체의 탄도미사일 여부에 대해 3주가 다 된 시점에서도 여전히 “분석중”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8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미가 분석중인 북한 발사체와 관련해 최신 상태를 업데이트 해달라’는 요청에 “분석중”이라고 답했다. 4일과 9일 당시에도 “분석중”이라고 답했는데, 지금까지 계속 “분석중”이라는 것이다.

최 대변인은 ‘북한 외무성이 조선중앙통신에서 탄도미사일이라고 시인했고,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탄도미사일이라고 했다. ‘분석중’이라는 우리 입장과는 간극이 크다’는 질문이 재차 이어지자 “현재 그 사안에 대해 한미 간에 입장 변화는 없다”며 “분석, 세밀한 분석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1718호), 2009년(1874호), 2017년(2397호) 등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있을 때마다 대북제재 결의안을 거듭 채택,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한 어조로 금지하고 있다. 북한이 이를 어기고 탄도미사일을 계속 발사하면 할수록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및 압박은 강화된다.

만약 북한 발사체가 탄도미사일로 공식 규정되면 한국과 미국은 유엔 대북 결의에 따라 북한과의 대화 노력을 중단하고 강력한 압박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방부가 장기간 “분석중”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파국’을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일각에선 국방부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대해 ‘북한과의 대화 불씨를 살리기 위한 안간힘이 아니겠느냐’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할거냐’는 힐난의 목소리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 수뇌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 방문 기간에 볼턴 보좌관이 북한의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규정하고 유엔제재 위반이라고 주장하자 “나의 사람들은 위반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르게 본다”며 공개적으로 반박한 바 있다.

우리 국방부의 “분석중”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정리되지 않은 미국 내부 사정과 북한 문제를 대화로 풀려는 현 정부의 기조가 맞닿은 곳에 절묘히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육군의 “검토중”, 국방부의 “분석중” 외에도 군에는 “확인중”, “조사중”, “파악중” 등 다양한 “○○중”들이 있다. 이러한 “○○중”들이 본연의 뜻을 잃고 다른 의도로 활용되고 있다는 정황 증거가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 육군 수뇌부는 “기자 질문에 ‘검토중’ 스탠스를 유지하라”는 지침을 하달한 사실이 드러나 “○○중”을 특정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 됐다.

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들에 대해 의혹과 논란이 확산되는 것도 이런 군의 “○○중” 남발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공자는 좋은 정치를 하려면 군대, 식량을 포기하더라도 국민과의 신뢰를 지켜야 한다며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강조했다. 그 본 뜻이 어떠하더라도 군이 이런 식으로 “○○중”을 계속 특정 목적을 위해 활용하려 든다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수한 정치섹션 정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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