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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탑골공원이 3ㆍ1운동 중심지였던 이유는
문화재청, 항일문화유산 현황과 보존ㆍ활용방안’ 심포지움
“서울 중심지라 만세운동 일어난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상징이었기에 선택했을 것”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이유는 ‘대한제국’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전까지 서울에서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장소로, 만세운동의 효과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었으리라는 막연한 추정을 넘어선 견해다.

지난 22일 문화재청이 주최한 ‘항일문화유산 현황과 보존 활용방안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나선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대한제국과 3ㆍ1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의 현장과 역사유산’이라는 주제로 탑골공원에 대한 위상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탑골공원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3ㆍ1운동의 기폭제가 된 독립선언서가 낭독됐고,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안 교수는 “탑골공원은 대한제국의 근대 국가 건설프로젝트로 건설된 공원으로, ‘대한제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소였다”며 “이것이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로 선택될 수 있는 단초가 됐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대한매일신보 1905년 12월 12일자에는 탑골공원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개탄하며 자결한 고종황제의 외사촌 동생인 민영환의 기념각을 세운다는 기사와 민영환이 만든 군악대가 탑골공원 옆으로 이전했다는 기사가 났다. 안 교수는 “대한제국 최고의 훈장을 받은 민영환을 기리는 장소로 탑골공원이 선택됐다는 사실은 이곳이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장소였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또한 팔각정에 대해서도 “형태와 구법이 대한제국의 상징적 건축인 환구단과 매우 유사하다”며 “8이란 숫자의 상징성은 추후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황제를 칭하는 숫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안 교수는 이같은 역사적 의미가 깊은 탑골공원이지만 계승과 보존에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대한제국시기 탑골공원 명칭이 ‘탑동(塔洞)공원’이었다며 ▶역사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현재 명칭에 대한 사회적 논의 ▶박정희 대통령이 쓴 ‘삼일문(三一門)’편액 계속 사용 여부 ▶서울대 사범대 부속초등학교로 옮겨진 탑골공원 정문의 원위치 이전 ▶군악대 위치 파악 등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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