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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 청정’이라더니…‘경의선 술길’이 된 연트럴파크
-음주청정지역 지정 불구 술 없는 시민 찾기 힘든 지경
-단속 2개월째 0건…범위 모호에 단속원 수도 턱없이 부족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지난 9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숲길을 둘러보니 벤치와 화단 등 곳곳에서 빈 맥주캔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야외 음주’를 즐긴 후 아무렇게나 버리고 간 것이다. 20대로 보이는 한 무리는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며 한참을 떠들더니 슬쩍 일어났다. 먹던 닭튀김과 맥주캔은 한 쪽으로 스리슬쩍 밀어둔 뒤였다. 몇몇은 술을 꽤 마신듯 비틀거렸으며, 술에서 깨겠다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옆을 걷는 시민은 이들을 피하고자 어깨를 움츠렸다. 술을 안 마시는 방문객을 찾기가 더 힘든만큼 눈 닿는 곳마다 ‘술판’이다. 근처에서 ‘우리 공원은 2018년 1월1일부터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 운영됩니다’란 플래카드가 보여 씁쓸했다.

서울시가 정한 ‘음주청정지역’에서 술로 인한 단속 수가 2개월째 0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예견된 일이라는 지적이다. 단속 기준이 모호하고, 공원 크기 대비 단속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1일 시에 따르면, 시는 경의숲길 등 직영으로 운영하는 공원 22곳을 올해 1월부터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했다. 계도기간으로 3개월을 둔 후 지난 4월1일부터 단속을 시작했다. 술에 취해 소음, 악취 등 다른 시민에게 혐오감을 주면 1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올바른 음주문화를 만들겠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4~5월 2개월간 단속 수는 전무하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숲길에서 시민이 돗자리를 편 채 휴식을 즐기고 있다. 돗자리마다 맥주가 담긴 일회용컵이 눈에 띈다. ‘음주청정지역’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무색하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실적이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술 마시는 것 자체는 단속 대상이 안 된다. 소음, 악취 등이 유발돼야 하는데 얼마나 심해야 단속망에 걸리는지 확실하지 않다. 경의선숲길에서 만난 주민 최모(45) 씨는 “술 먹고 똑같이 난동을 부린다고 해도 상황따라 처벌이 달라진다는 것 아니냐”며 “행정력만 낭비하는 규제안”이라고 했다.

단속원도 그 범위를 모르니 통제가 안 된다. 한 단속원은 “계도도 겨우 하고 있다”며 “명확한 지침이 오기 전까지 웬만큼 상황이 심하지 않은 이상 단속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시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금주 구역을 지정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없어 조례 기준을 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례는 상위법에 관련 규정이 있어야 법적 효력이 생긴다. 시 관계자는 “단속 기준을 만들고자 조례 의결 때부터 국회에 법 개정을 요청했지만 답이 없다”며 “우리도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건이 해결된다해도 더 큰 문제가 있다. 실효성이다. 시가 음주청정지역으로 둔 공원 22곳의 전체 크기는 10.4㎢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각 공원에서 한 근무시간대에 활동하는 단속원의 수는 보통 2~4명이다. 40~80여명이 여의도(2.9㎢)의 3.5배 수준 면적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속원은 쓰레기 무단투기와 개목줄의 유무 등도 살펴보고 있다.

시는 우선 ‘음주청정지역’ 홍보와 캠페인을 통해 시민의식 변화를 이끌어보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경의선숲길 등 시민의 음주행위가 잦은 곳은 오는 가을까지 경찰, 청소년 등과 함께 관련 안내문이 담긴 물티슈를 나눠주는 등 방식으로 게릴라성 행사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광고 상징물 설치와 라디오를 통한 질서유지 안내방송 등도 고민중이다.

시 관계자는 “추후 심포지엄을 열고 시민이 공감하는 단속 기준도 윤곽을 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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