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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핵화 체크메이트 아닌 ‘판뒤집기’ 한 트럼프…왜?
-北김계관ㆍ최선희 담화와 실무접촉 불발로 신뢰 무너져
-北‘벼랑끝 외교’에 강공법…北 길들이기?
-워싱턴 내 ‘잘못된 합의’ 우려의식
-“언젠가 만나기 바란다”며 여지 남기기도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북한이 관영매체를 동원해 극단적 선택을 시사하며 판을 짜는 ‘벼랑끝 외교’를 펼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전격취소하며 판을 뒤집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8일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의를 수용하면서 형성된 북미 대화기조가 77일 만에 깨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회담 취소는 ‘회담 재고려’ 카드를 이용해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선점하려는 북한을 길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프랭크 엄 미국 평화연구소(USIP) 선임연구위원은 25일 본지와의 서면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회담 취소가 “전형적인 거래술(gamesmanship)”이라며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의 담화가 이뤄진 이후에도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북한과의 대화에 절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에 정통한 소식통은 “회담에 필요한 실무접촉이나 물밑접촉에서는 별말을 하지 않다가 관영매체로 비난일색으로 나오는 북한의 외교접근은 비정상적”이라며 “대화를 하고 싶다면 대화방법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사진=백악관 제공]

북한은 그동안 대화과정에서 불만이 생기거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판을 극단적인 상황 직전까지로 몰고가는 벼랑끝외교를 펼쳐왔다. 북한은 김 제1부상과 최 부상의 담화문을 통해 미국에 대한 압박을 가했다. 북한이 반대하는 ‘리비아 비핵화 모델’이 미국 내 공론화되면서 나오기 시작한 담화였다. 김 제1부상과 최 부상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콕 집어 비난하고 리비아 비핵화모델을 거부했다. 아울러 미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경우, 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북한에 대한 불신도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결정하는 데 한몫을 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안보전문가는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과 ‘대화는 미국이 먼저 요청한 것’이라는 최 부상의 거짓말이 백악관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라며 “담화나 실무접촉 불발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해봤을 때 트럼프 행정부는 김 위원장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를 수용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백악관의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으며, 정상회담을 취소하게끔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과의 평화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북한은 수사(말)를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이 기꺼이 통과하고자 한다면 여전히 열려 있는 뒷문이 있지만, 그것은 최소한 그들의 수사 방식을 바꾸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무회담을 깨버린 북한에 대한 불만도 회담을 취소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비공개 컨퍼런스콜에 나선 백악관 고위관계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9일 방북했을 때, 양측은 지난주에 싱가포르에서 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회담을 하기로 했었다”며 “그러나 북한은 아무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한은 우리를 바람 맞혔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에 수많은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면서 “이 같은 대화 중단은 심각한 신뢰 부족을 암시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대해서도 “북한은 전문가를 현장에 초청하겠다는 약속을 깨뜨렸다”면서 “(현장 취재를 한) 미 CBS방송도 검증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다고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군축’을 거듭 강조하면서 워싱턴 내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결국 ‘실패한 합의’로 이를 것이라는 회의론이 고조된 상태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 진짜 이유는 북한이 회담을 추진하면서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해나가며 비핵화 회담이 아닌 군축회담을 추구하고 경제완화를 누리려고 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라며 “북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희박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 워싱턴 내에 회의적인 기조가 강해지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내부 의견 조율을 위해 회담이 취소된 측면이 있다”며 “워싱턴 내 회의론을 잠재운 뒤 다시 회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 제1부상이 재차 담화를 통해 대화의지를 피력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가능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을 취소하면서도 “언젠가는 당신을 만나길 고대한다”면서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주저 말고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여지를 남겼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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