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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 부실 판결①] 겨우 3심 갔는데 달랑 두줄 판결문…문제는?
-상고 이유 10개 제출해도 “법리 오해 없다” 짤막
-일각 “심리 없는 ‘심리불속행’과 다를 게 뭐냐”

[헤럴드경제=유은수 기자]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거기에 상고 이유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대법원 판결문 중 상당수는 이처럼 2~3 문장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2심 판단을 그대로 확정짓는 상고기각 판결에서 볼 수 있는데, 대법원에 상고한 이유를 왜 받아주지 않는지 이유를 사실상 생략한 셈이어서 ‘깜깜이 판결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헤럴드경제DB]

9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고심에서 처리된 민사 본안 사건 1만3362건 가운데 상고기각이 1만2137건(90.8%)을 차지한다. 이 중 1,2심 판결 결론이 엇갈리지 않은 사건이나 사회적 주목을 받지 않은 사건, 소송 액수가 크지 않은 사건을 위주로 ‘세 줄 판결문’이 작성된다.

대법원은 9명에 불과한 대법관들이 1년에 4만 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하는 여건을 감안하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상고심은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사실심’이 아니라 법리 해석이나 적용의 오류를 따지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이 잘못됐다는 주장까지 모두 판단해줄 필요가 없다고도 설명한다.

하지만 변호사업계에서는 불만이 많다.

의뢰인과 협의해 항소심에 불복했지만, 왜 그대로 판결이 확정되는지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단기간에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면 덜하다. 수년 간 기다린 끝에 2~3줄 짜리 판결문을 받아보는 경우에는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 셈이 된다. 소송을 대리한 변호사 입장에서는 상고기각 사유를 모르니 의뢰인에게 대법원 결론이 뭔지 제대로 된 설명을 하기도 어렵다.

법무법인 우리의 김정철(42ㆍ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는 “의뢰인으로서는 대법원이 마지막으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법리적인 쟁점이 되는 논문까지 최대한 첨부해서 상고 이유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고 이유를 1부터 10까지 적시하면 적어도 각 항목마다 왜 이유가 안 되는지 간단히라도 밝혀야 하는데, 지금 대법원은 그 중 2~3개만 판단하거나 ‘면밀히 검토한 결과 법리 오해의 위법이 없다’고만 쓴다”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 제384조는 ‘상고법원은 상고이유서에 포함된 사유에 관하여 심판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민사소송법 제431조는 ‘상고법원은 상고이유에 따라 불복신청의 한도 안에서 심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부실 판결문을 받는다면 심리불속행 기각과 다를 게 없다는 불만도 나온다. 심리불속행은 3심 사건 가운데 상고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아예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2심 결론을 확정짓는 제도를 말한다. 형사 재판을 제외한 사건에 적용된다. 최진녕(47ㆍ33기) 법무법인 이경 변호사는 “심리불속행 비율이 높아 상고심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판하니까 형식을 바꿨을 뿐, 사실상 알맹이는 똑같다”다며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아주 큰 문제의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변호사들은 두세줄 짜리 상고기각 판결문을 받아보느니 심리불속행으로 인지대 절반이라도 돌려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2012년 개정된 ‘민사소송 등 인지법’은 심리불속행 판결이 내려질 경우 소송 당사자가 지급한 인지대 절반을 돌려주도록 하는 규정을 뒀다. 지난해 상고심 민사 본안 사건 가운데 심리불속행 기각된 사건은 1만322건으로 77.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고 기각 사건 중 85%에 이른다.

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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