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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에도 손색없는…17세기 중국 ‘웰빙백서’
청대 지식백과 ‘한정우기’ 국내 첫 번역
여성 머리 손질법·꽃재배·인테리어까지
먼지 안나는 청소법 등 ‘삶의 지혜’가득
버섯·죽순·나물 활용 건강먹거리도 소개

옛날 여인들의 머리형태는 천편일률적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중국 청대 여인들은 매우 다양한 모양으로 머리를 꾸몄다. 당시 기록을 보면 유행한 형태만 서른가지가 된다.

명말 청초 시기 활동한 인기작가이자 문화사업가였던 이어(李漁, 1611~1680)는 지식백과사전격인 ‘한정우기(閑情偶奇)’에서 두발을 용 모양으로 손질하는 법을 상세하게 적어놓았는데, 자신이 개발한 머리형태에 무척이나 만족했던지, “숭배받을 만한 일”이라고 스스로 찬탄했다.

청나라 초기에 쓰인 ‘한정우기’는 지식백과사전이자 삶을 건강하게 즐기는 법을 소개한 양생서로 이번에 국내 첫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모두 8부로 구성, 사곡부와 연습부는 이어의 전공이랄 희곡 연출에 대한 얘기이며, 나머지는 일상의 의식주 전반을 다루고 있다. 여성의 관심을 끌 만한 성용부(聲容部)에는 여인의 용모, 화장법, 옷입기 뿐 아니라 세수하기, 눈썹그리기, 몸매를 날씬하게 보이게 하는 벨트와 조끼 이용법, 양말과 발이 닿는 땅의 색깔까지 고려한 신발 선택법까지 세세하게 소개해 놓았다.

“잠은 또 반드시 먼저 장소를 선택해야 한다. 좋은 장소는 두 곳으로 조용한 곳과 시원한 곳이다. 고요하지 않은 장
소는 눈이 잠들 수 있을 뿐이고 귀가 잠들 수 없어 귀와 눈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므로, 어찌 몸을 편한케 하는 좋은
계책이겠는가? 시원하지 않은 장소는 단지 혼이 잠들 수 있을 뿐이고 몸이 잠들 수 없으며 신체와 혼이 합치되지
않은 것은 바로 양생의 지극한 금기다.”‘(쾌락의 정원’에서)

이어는 정원 만드는 일을 자신의 재능으로 들었는데, 집을 꾸미는 일에 상당부분을 할애해 창문과 난간, 담장과 벽을 정취있는 공간으로 꾸미는 법을 공 들여 소개해 놓았다.

이어는 사치와 낭비를 금하고 검소함을 제일로 쳤다. 거실의 경우 정교하고 우아함이 화려하고 현란한 것 보다 귀중하다고 봤다. 그는 대체로 사람들이 부귀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신기하고 참신한 걸 표방할 수 없어서 부귀하고 화려한 것으로 얼버무리는 것이라는 독특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비질을 할 때는 반드시 비를 바닥에 대고 있어야지 한번 쓸 때마다 들면 부채질과 같아서 먼지를 없애는 게 아니라 더 일어나게 한다든지 집을 정갈하게 유지하려면 잡동사니, 쓰레기를 감출 별도의 작은 방 한 칸, 요즘의 다용실격인 투방이 꼭 필요하고, 화장실은 서재의 곁에 마련하는게 좋다는 등 서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한 세심한 조언이 눈길을 끈다.

그의 독창성은 창문과 난간에서 빛을 발하는데, 간결하고 자연스러움을 양식의 으뜸으로 쳤다. 창을 통해 풍경을 감상하는 차경의 비밀은 그의 심미안을 보여준다. 그는 스스로 다양한 창을 만들어 정취를 즐겼는데, 부채꼴 모양의 창을 만든다든지, 원경이 없을 경우, 부채꼴 창에 그림을 그려넣는 방법도 소개해 놓았다. 진흙담이나 흙벽을 쌓을 때 줄을 이용해 가지런하게 올리는 법, 서재의 벽을 장식하는 법, 편지지 만드는 법 등 요즘 활용해도 좋을 법한 실용적인 정보들이 많다.

관습적으로 해온 것들, 남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 것들을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시키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흰색 종이로 벽을 도배하는 대신 도자기를 모방해 만든 그윽한 서재를 그는 자랑스럽게 소개해 놓았다. 먼저 진한 홍갈색의 종이 한 겹을 벽에 발라 바탕으로 삼은 뒤 푸른 콩 색의 운모전을 손이 가는대로 찢어 자잘한 조각으로 만들어 진한 홍갈색의 종이 위에 붙이는 거다. 이는 방안 가득 얼음이 갈라진듯 자잘한 문양이 생겨 마치 아름다운 자기와 같게 된다는 설명이다.


의자밑에 석탄이나 차가운 물을 설치하는 식으로 겨울용 의자와 여름용 의자를 고안하고, 침대의 휘장에 걸 씌우개를 마련해 자주 세탁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처마 밑에 날씨에 따라 변형가능한 차양 만들기 등 이어는 생활의 발명가라 할 만하다.

갖가지 꽃의 재배방법을 소개한 대목에서도 그는 이미 앞선 책들에 소개된 내용은 ‘모방’에 불과하다며 소개하길 꺼리는 대신 자신이 관찰한 사실만 호기롭게 들려준다. 그는 현자들이 ‘해당화가 자색만 있고 향기는 없다‘고 한 학설을 증명하려 갓 피어난 해당화를 잡고 냄새를 맡아보았더니 특유하게 일종의 맑은 향기가 풍겨왔다고 털어놨다.

모란을 왜 꽃의 왕으로 꼽을 만 한지, 복숭아를 맛있게 하는 방법, 살구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하는 방법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얘기들도 이어진다.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육식보다 채식을 권하는데 버섯, 죽순, 각종 나물의 이로운 점 등을 소개하고 매일 먹는 밥, 죽, 국수 등을 자세히 다뤘다.

이어는 인생은 한번 뿐이니 즐기는 게 마땅하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러면서 지나치면 몸을 망칠 수 있으므로 절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먹거나 자거나 놀거나 모두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하는 게 핵심이다.

1671년 출간된 ‘한정우기’는 17세기 중반 중국 강남의 물질문명의 단면을 보여준다. 넘쳐나는 사물의 취향 속에서 남을 따라하기 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한 이어는 시대의 ‘17세기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해도 무방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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