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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PAS]사무실의 갑들 “언제나 그랬죠…합의하자”

[헤럴드경제TAPAS=윤현종 기자] 

"똑바로 못해?!"

사장이 임원에게 호통치며 서류 뭉치를 건네고 사라진다. 쩔쩔 매던 임원은 옆에 선 부하 직원을 향해 서류를 집.어.던.진.다.
1987년, TV채널 서너개 뿐이던 시절. 6년 간 황금 시간대 전파를 탄 어느 드라마 오프닝 장면이다.

[출처=유튜브 캡처]

‘샐러리맨의 애환’을 담았다며 호평받은 이 프로는 시청률 20%(1992년 기준)를 넘겼다.

[출처=유튜브]

2013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만든 캠페인 영상. 회사원의 고달픔은 여기도 나온다. 상사가 집어던진 서류에 맞는 장면은 덤이다. 

2014년. 인기 드라마였던 ‘미생’에도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슬픈 음악과 함께.
모든 미디어와 콘텐츠가 따라하기 바쁜 클리셰가 됐다.
‘힘든 직장인 장면 ≒ 서류 던지는 상사 앞에서 쩔쩔매기’

[출처=유튜브]

   ‘애환’으로 미화한 폭력

지난 30여년 간 무감각하게 봐 온 씬들은, 사실 폭행 장면이다.
정확히 말하면 직장에서 일어난 준폭행. 신체에 폭력을 가하진 않았지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위해를 가한 것이다.
직장갑질 119 분석에 따르면, 지난 5개월 간 신원을 확인한 직장 폭행 제보 가운데 33%가 준폭행이다. 10건 중 3건 꼴. 두번 째로 높은 비율이다.

   사무실의 ‘조현민’들

사례는 다양하다.

“화가 난 사장님이 사무실로 들어와 제 책생을 발로 차고, 제 옆에 파일을 수 차례 주먹으로 내려쳤고 욕설과 함께 폭언을 했습니다…남자직원에겐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어요”
(유통업 I 사 직원)

“저 석사출신 학습지 교사입니다…급여를 주지 않아서 제발 돈 좀 입금해 달라…제 아이가 피곤해서 옆에 엎드려 있는데도 제 가방을 집어던져 버렸습니다”
(학습지 J사 직원)

“지시했던 일이 늦자 마우스를 모니터로 던지면서 ‘아이XX 그거 하나 빨리 처리 못하냐’라며 폭언했습니다”
(K업체 직원)

[사진=123RF]

   폭행은 진화한다

위협에 그치는 준폭행 상황을 유야무야 넘겼다? 신체에 가해지는 진짜 폭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직장갑질 119에 들어온 제보 중 절반 이상이 준폭행보다 더 심한 단순폭행이었다. 참다 못해 호소한 것.

“…처음 화낼 땐 으이구 이러면서 엉덩이 때리거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기분 나빴지만 당연히 참았구요, 그만두기 싫었거든요…(이후) 따지다가 그 직원이 제 목을 꽉 잡고는 조르듯이 흔들어댔습니다”
(경북 D매장 직원)

“XX이 열받을 땐 반말과 고성이 반복됐지만 일을 배우려는 마음으로 참았습니다…이후엔 눈을 왜그렇게 뜨고다니냐 약먹었냐 머리 하고 왔더니 머리를 만지면서 툭툭 치는 등”
(경기도 B복지시설 직원)

 
[사진=123RF]

   회사에 알려도 ‘합의해라’뿐

더 큰 문제는 사건 해결 과정이다. 내가 당한 폭행을 회사에 알려도 ‘나의 불이익’일 뿐이다. 도움은 없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의 설명이다.

“저희가 받은 제보 중에 회사에 얘기해서 제대로 구제 받은 피해자는 1명도 없었습니다. 
저희가 주목하고 있는게 폭행 당한 분들이 회사에 말을 하잖아요, 그러면 회사가 당사자 간 개인 문제로 취급하고 ‘웬만하면 좋게 좋게 넘어가라’ 이런 경우가 절대다수예요.
그리고 폭행 사건 가해자 대부분은 조직 내 상급자입니다. 그러면 사건을 다루는 담당자가 기본적으로 가해자인 상급자 편에 섭니다. 제가 어제(23일) 통화한 사례였습니다. 둘이 불만 있으면 불만 풀고 오해 풀고 사과 시킬테니 정리하자…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게 대부분이예요”

#조현민이_진짜_사라져도_바뀌려면_멀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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