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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배카페골목 40년, 과거와 현재①]올해로 40년 된 ‘방배 카페골목’, 화려함은 사라지고...
-1980년대 떠오른 방배 카페골목
-‘장미의 숲’ㆍ‘제임스 딘’ 사라져
-기억 속에 남은 ‘과거의 길’로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예전에는 향수나 인형, 14K 액세서리 같은 걸 많이 팔았어요. 요즘엔 장난감이나 문구류가 많아요. 손님도 인근 아파트 주민이 90% 가량이고 아이엄마들이 자주 찾아요. 예전에 비해 손님이 줄긴 했지만, 건전한 가족문화 중심 공간으로 달라졌다고 봅니다.”

지난 13일 서울 방배 카페골목 중간 쯤에 자리한 문구점 ‘팬시뱅크’. 황연숙 팽시뱅크 사장은 세월 만큼 달라진 방배 카페골목의 분위기를 이렇게 말했다. 황 사장은 25년 간 이 자리에서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다.

팬시뱅크

카페골목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문구점은 과거에는 24시간 영업을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새벽 6시까지 문을 열어도 찾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젊은이들이 놀다가 잠시 들러 선물을 사는 곳으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요새는 자정이 되기 전인 오후 10시30분이 되면 문을 닫는다. 주 고객층이 젊은층에서 인근 아파트 주민으로 바뀐 탓이다. 아이를 둔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찾는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영업시간이 단축된 것이다.

올해는 방배 카페골목이 생겨난 지 4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과거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현재는 특색있는 카페가 없어 이름뿐인 ‘카페골목’으로 남아 있다. 그 나마 있는 카페도 프랜차이즈 카페들만 있고, 몇몇 유명 맛집들만 이곳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하고 있다.

카페골목 초입

▶‘장미의 숲’…방배 카페골목의 탄생=방배 카페골목은 1978년 이수교차로 입구 방배중앙로 208에 카페 ‘장미의 숲’이 문을 열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서울 동작대로와 방배로 사이 1㎞ 남짓 뻗어 있는 왕복 2차선 도로를 일컫는 말이다.

이 곳의 공식명칭은 ‘중앙로’이지만 오랫동안 ‘카페골목’으로 불려 왔다. 1970년대 후반만 해도 방배동은 허허벌판이었다. 빈 공터에는 아마추어 야구선수들이 연습게임을 벌였고, 겨울이면 흙바닥이 얼어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카페 ‘장미의 숲’을 시작으로 카페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고 그 좌우로는 아파트가 세워졌다. 명동을 활보하던 멋쟁이들은 다리를 건너 방배동으로 모여들었다. 연예인과 젊은이들이 꼬리를 물고 찾아들었다. 이상벽, 조하문 씨 등은 직접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영원한 ‘가인’ 유재하가 직접 치는 기타 소리가 울려퍼졌고, 방송인 주병진 씨가 문을 연 카페 ‘제임스 딘’에 들르면 주병진 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시절이었다. 차와 칵테일 가격은 다른 지역의 2배였지만 사람은 계속 늘어났다. 밤샘영업을 하는 고급 옷가게들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과거 ‘장미의 숲’ 자리에는 현재 화덕피자와 파스타 맛집인 ‘치뽈라’가 들어서 있다. 또 주병진의 카페 ‘제임스 딘’은 1층 90삼겹살과 2층 베르디가 자리한다. 이곳은 제임스 딘 이후 PC방이 들어섰다가 2012년부터 백화점에 가방을 납품하는 베르데(verde)라는 업체가 자리하고 있다. 베르데 1층에는 80삼겹살이 위치한다. 

치뽈라(과거 ‘장미의 숲’ 자리)
80삼겹살(과거 ‘제임스 딘’ 자리)

▶1990년대 이후 침체…최우선 단속 대상=1980년대 전성기를 누린 방배 카페골목은 1990년대 들어 침체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부 카페들을 손님을 끌기 위해 호객꾼인 일명 ‘삐끼’를 고용하기도 했다. 호객행위와 퇴폐영업이 늘어나면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원성이 들끓었다. 유흥업소의 심야영업에 대한 일제 단속이 시작됐고,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카페골목은 가장 먼저 단속 대상에 올랐다.

이 곳에서 25년째 유경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씨는 ”저녁마다 구청 사람들이 확성기를 잡고 ‘청소년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방송했었다”며 그 시절을 회고했다.

단속은 강화됐지만 퇴폐영업은 그치지 않았다. 번창할 대로 번창한 향락산업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주당(酒黨)들은 “방배동에 가면 심야영업 한다”며 모여들었다. 경찰은 또 다시 단속을 했고, 심야영업은 잠시 주춤하다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일이 반복됐다.

음주, 퇴폐 관련 뉴스의 첫 장면은 으레 방배동이었지만 단속이 심할수록 영업은 더 잘 되곤 했다. 주당들은 카페 대신 술과 안주를 찾았다. 술과 해장국을 같이 파는 집들이 생겨났고, 커튼을 치고 영업했던 음식점들은 아귀찜과 꽃게탕을 파는 현재의 먹거리 골목으로 이어진다.

주택가와 유흥가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단속과 밀실영업의 틈바구니 속에 카페는 사라지고 ‘낮에는 주택가, 밤에는 먹거리 골목, 새벽에는 유흥가’라는 정체불명의 거리만 남았다. 방배 카페골목은 IMF 이후 본격적인 침체기를 맞았다. 이제는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이자 택시기사들만 하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과거의 길’이 됐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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