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TAPAS=윤현종 기자]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참사 때 희생된 32명을 ‘잊지 않기’ 위해 세워진 위령비는 서울숲 바로 옆에 있다. 그러나 이곳은 700만 명 넘는 서울숲 방문객과 어린이ㆍ고령자 등 교통약자 220여만 명에겐 완벽히 잊혀진 곳이었다.
걸어서 참배하려면 교통법규를 위반해야 한다. 생명 위협도 감수해야 한다.
구호만 요란할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 ‘시민교육의 장’이 그곳이다.
스마트폰 지도 없이 성수대교 참사 희생자 위령비를 ‘걸어서’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숲한강사업본부 에서 간신히 찾은 위령비 주차장 표지판. 촬영 시각 3월 28일 오후 5시47분 |
TAPAS팀은 지난 28일 지도로 찾은 위령비 ‘좌표’인 성동구 성수동1가 685-571을 도보로 찾아갔다. 그러나 오후 5시 47분께부터 6시 9분까지 22분 간, 강변북로 찻길을 무작정 헤매야 했다.
유일한 통로는 도로와 연석 사이 약 50㎝ 너비 갓길 뿐. 차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고속화도로라서다.
시속 40km서행 구간이지만 공포의 연속이었다. 보행자에 특히 위험한 구부러진 길을 몇 분이나 걸었을까. 겨우 위령비 주차장 표지를 발견했다.
그런데 위령비는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서울숲 지하차도 입구 쪽으로 잘못 들기도 했다. 되돌아 갔다. 주차장 옆 나무 사이로 위령비 일부가 비쳤다.
주차장과 위령비는 각각 자동차전용도로 2개 사이에 놓인 섬이다. 한강사업본부 쪽 갓길에서 나무사이로 겨우 보이는 위령탑(노란색 네모 안). 도로 2개가 도보 접근을 막고 있다. |
걸어서 그곳에 가려면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2번 건너야 했다. 먼저 주차장에 ‘상륙’해야한다. 무단횡단은 필수다. 교통법규를 무조건 어겨야 한다.
주차장에 닿아도 또 하나 놓인 찻길을 지나야 한다. 여기엔 횡단보도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신호등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천신만고 끝에 위령비 앞에 도착해 참배했다. 촬영시각 3월 28일 오후 6시 9분 |
희생자 32명 이름이 새겨진 ‘24년 전 성수대교’가 보행객에게 잊힐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가는 길 초입을 찾는 것부터 힘들기 때문이다.
위령비에 가려면 서울숲을 거쳐가는 게 필수다. 그러나 서울숲에선 그곳에 갈 수 있는 어떤 표지도 찾을 수 없었다.
서울숲 안내 표지판엔 성수대교 참사위령비가 없다. 스마트폰 지도와 대조해 찾아낸 위령비 위치(노란색 네모 안 그림) |
서울숲 안내도 |
사정이 이렇다보니 취재진이 만난 서울숲 방문객 10여명 중 누구도 바로 옆에 성수대교 참사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한강을 볼 수 있는 서울숲 전망데크. 올라서면 성수대교참사 희생자 위령비를 멀찌감치나마 볼 수 있지만, 서울숲 안내도 등엔 어떤 설명도 없다. |
서울숲을 헤매며 차도 건너 멀찌감치 보이는 위령비를 찾아도 문제다. 직선거리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 서울숲과 도로를 가르는 경계이기에 철조망 펜스로 가로막혀 있다. 한강사업본부 건물로 난 샛길을 이용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거기서부턴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를 따라가야 한다.
사진 왼쪽 표지판이 위령비 주차장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바로 오른쪽이 서울숲. 펜스로 가로막혀 있어 직선 접근은 불가능하다. |
위령비 주차장에서 서울숲까지 직선거리는 어림잡아도 30m가 채 안 된다. 경계 펜스를 조금만 걷어내고, 횡단보도만 설치해도 24년 전 성수대교와의 거리는 훨씬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나 서울숲 방문객 750만 명(연간 기준)과 어린이ㆍ고령자 등 서울 교통약자 227만 명(2014년 기준)에게 그곳은 너무나 멀다.
위령비 앞에 설치된 안내문 |
“이 위령비는 1994년 10월 21일 구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희생된 32분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추모의 장’이며, 1000만 서울 시민이 안전관리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교육의 장’이오니 경건한 마음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위령비 앞에 설치된 안내문 설명이다. 희생자 유가족을 뺀 모두를 잊어버리게 만든 ‘시민 교육의 장’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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