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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이후, 4년째 멈춘 시간…“가슴 찢어져도 기억하고 싶다”
故동수 군 엄마 김도현씨 인터뷰
연극하며 이웃통해 상처 치유
가족잃은 서로의 아픔 보듬어
“촛불 불지핀 아이들로 남길…”


“아이 얼굴이 기억 안 나면 그때마다 미칠 것 같아요”. -故동수 군 엄마 김도현 씨

떠올리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도 엄마는 내 아이에 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다. 자식의 죽음은 잊을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함께 했던 기억만큼은 다시 없는 추억이기 때문이다. 소녀처럼 깔깔 웃다가도 불현듯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엄마들. 이들의 시계는 2014년 4월 16일에 머물러있다. 

무대인사 중인 수인엄마 김명임 씨(왼쪽 세번째), 예진엄마 박유신 씨(왼쪽 다섯번째), 동수엄마 김도현 씨(왼쪽 일곱번째).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세상에 받은 상처, 같은 처지 엄마들이 모여 위로 = 아이가 떠난 후 찾아온 고통의 폭풍은 어느 순간 슬픔도 분노도 쏟아내기 어려운 공허로 바뀌어갔다. 엄마들이 매일 하던 밥짓기도 집안일도 사고 후엔 너무나 버거운 일상이 돼버렸다. 그때 엄마들은 ‘뭐라도 하기 위해’ 모였다. 어떤 엄마들은 모여서 연극을 했고, 다른 엄마들은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는 뜨개질을 배우기도 했다. 함께 있을 때 떠난 아이 얼굴이 더 생각나 슬플 때도 많았지만, 같은 고통을 공유한 유가족은 결국에는 큰 힘이 됐다.

“22일 만에 만난 동수는 차마 안을 수도 없는 상태였어요.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게 엄마들이었어요”.

동수 엄마 김도현 씨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극단 노란리본)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이웃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날한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은 슬픔을 온전히 보듬어줄 수 있는 유일한 이웃이었다. 내 사람이라 생각했던 지인들은 ‘보상금 받은 게 있으면 세월호 특별법 만드는 데 돌아다니며 뇌화부동하지 말고 내 사업에 투자하라’고 부추기며 상처를 줬다. ‘얼마 받았다더라’는 세간의 유언비어 역시도 유가족을 고립시키는 비수가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심해지는 세상에서 엄마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버텼다. 수인이 엄마 김명임 씨는 “시간이 흐르니까 그만하란 말 많이 나오더라.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어느새 유가족 뿐이었어요”라며 “세상에서 어느날 갑자기 삭제된 아이가 아닌데, 다른 곳에서 없던 사람처럼 잘라내버리니 엄마끼리 함께하며 아이 얘기하고 지내는 게 더 자연스러울 때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가끔은 웃지만 불현듯 왈칵…“이제는 웃으며 기억해주세요”= 세월호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는 어느덧 웃음꽃이 군데군데 피어난다. 하지만 그러다 왈칵, 그리움이 밀려오면 금새 눈물을 쏟는다.

호탕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는 동수 엄마지만 동수 이야기를 할 땐 금새 파르르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나를 동수 엄마라 불렀던 사람들이 이제 ○○(동수 동생)엄마로 부르더라고요. 내 자식인데, 없었던 사람이 될 순 없잖아요.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고 해서 이름도 안 부르고 없던 사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자연스럽게 그냥 동수 엄마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다보면 먼 훗날엔 가슴에 묻을 수 있겠죠”라고 말했다.

뒤에서 눈물을 훔치는 엄마들이지만 세상에 바라는 건 계속해서 슬퍼해달라는 부탁만은 아니다. 동수ㆍ수인 엄마와 함께 연극에 출연해 할아버지 분장도 불사한 예진양 어머니 박유신 씨는 “세월호는 슬프지만 연극은 코믹극으로 준비했어요. 4년 가까이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슬프지만 잠시마나 웃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 연극이 여러분이 계셔서 감사했다고,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돼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그냥 불쌍하게 죽은 아이들이 아니라, 촛불혁명에 불을 지핀 아이들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예진 엄마 박유신 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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