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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탐색]대중문화 중심에 詩가 뜬다…예능ㆍ힙합ㆍ드라마 종횡무진
-고등 래퍼 가사 속에 녹아든 신동엽ㆍ김지하
-대중 문화 깊이 얕봤던 수용층까지 포섭
-“외로운 현대인…정서적 허기 채워줄 대중문화의 등장”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5천원짜리 맨투맨과 청색 반바지 / 내 Fashion 감각 욕했지만 / 난 채워놨지 속내 (…) 껍데기는 가 알맹이만 남고 / 난 거짓에서 순수함을 얻었네 (김근수ㆍ조원우, ‘껍데기는 가’ 중에서).

문학 중의 문학, 순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시까지 대중문화의 중심 컨텐츠로 부상했다. 예능ㆍ힙합ㆍK POPㆍ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접목된 시의 서정적 언어는 시가 대중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기존의 편견까지 기분좋게 깨부순다. 대중예술과 순문학의 만남을 통해 대중문화의 깊이가 보다 풍부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근수ㆍ조원우의 ‘껍데기는 가’. 사진=멜론 뮤직플레이어

▶힙합, 몰라봐서 죄송합니다=가장 눈에 띄는 결합은 시와 힙합이다. 요즘 대중 음악 가사는 의미 없는 외계어가 됐다는 기성세대의 편견을 반박하듯 시구를 차용해 한층 진화된 서정성을 보여주는 힙합곡이 속속 등장해 사랑받고 있다.

지난 16일 방송된 Mnet에서 방송 중인 랩 배틀 예능 프로그램 ‘고등래퍼 2’는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작품을 랩으로 재해석하는 배틀을 벌였다. 이날 방송에선 래퍼 김근수ㆍ조원우가 시 ‘껍데기는 가라’를 재해석해 인기에 영합하는 세태를 ‘디스’했고, 이병재ㆍ하선호는 시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따온 동명의 곡으로 ’야망이 좀 커서 배 안 차 이 정도로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라며 10대 감성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이처럼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에서, 발라드도 아닌 힙합 장르가 활발하게 순문학과 결합하는 현상은 비교적 최근에서의 일이다. 2016년 MBC 무한도전에서 황광희X개코 팀이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당신의 밤’이란 곡을 만들어 사랑받았을 때만해도, 시는 래퍼 개인의 감성보다 애국순열인 시인을 기리는 역할을 했었다.

반면 최근 각광받는 힙합곡들은 문학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포섭한 곡들이다. 현재까지도 음원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는 래퍼 문문의 역주행송 ‘비행운’은 김애란작가의 동명 소설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소설을 차용해 만든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란 후렴구는 곡의 자조적 분위기를 표현하는 부분 중 하나다.
방탄소년단. 사진=연합뉴스

▶드라마 컨셉된 詩, 문학 모티프 딴 아이돌 음악도= 이처럼 ‘듣는 시‘, ‘듣는 문학’을 사랑하는 청취자가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시 구절을 인용한 나레이션을 곳곳에 집어넣는 컨셉의 드라마도 방영을 시작했다. 지난 26일 전파를 탄 ‘시를 잊은 그대에게’다. 소설이 드라마화 됐거나 드라마의 한두 장면에 시 읽는 나레이션이 들어가는 경우는 전에도 있었지만 시 자체를 컨셉으로 잡은 드라마까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케이팝의 중심이자 대중성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아이돌 음악에서 문학적 요소를 적극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월드 스타로 떠오른 방탄소년단이 대표적이다.

방탄소년단 팬이라는 이수정(28ㆍ가명) 씨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모티프로 한 앨범을 가장 아낀다”며 “음악만 듣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성을 책으로도 느끼게 되니까 여러 방식으로 가수와 매개될 수 있는 것 같다. 방탄만의 독특한 정서가 해외에도 전달된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동안 외면받았던 문학, 그 중에서도 시까지도 대중문화와 적극적으로 결합한 최근 현상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시가 수용자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중문화의 요구를 충족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방민호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이성적이고 완벽한 사회에서 외따로 살아가며 느끼는 현대인들은 하나의 정서로 귀속감과 유대를 느끼고 싶은 갈망을 억눌리며 산다”며 “시가 대중과 한동안 괴리됐다고는 하지만 문학 중에서도 공동체적 정서를 환기하게 하는 대표적 장르다. 그래서 사람들이 외로워지면질수록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는 시의 효과도 극대화 된다”고 설명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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