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I.리멤버.U] 그럼에도 묵묵히 지켜왔다, 장하다! 대문로드
[헤럴드경제 TAPAS=구민정 기자] 대단한 불길이었소. ‘국보 1호’가 잿덩이가 되는 모습이었네만, 화마가 그리도 커서 방송사도 아주 먼곳에서 촬영해 보여줄 정도였소.


그런데 2008년 당시 대구에 살던 고등학생인 나로선 ‘남대문’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소.

그러다 회사에 들어온 후 자주 타는 202번 구루마가 ‘숭례문’ 정류장을 지나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소.

동대문역엔 ‘동대문’ 흥인지문도 있고 북대문 ‘숙정문’도 최근에 개방돼 가볼 수 있게 되었소. 지하철을 타고 인천, 천안, 춘천까지 가는 요즘 ‘수도권’에 비하면 사실 과거 사대문 안 한양은 꽤 작고 아담지만 이곳들에 얽힌 이야기들은 결코 아담하지 않소외다.

숙정문 정면

   숙정문

숭례문 정류장도 있고, 동대문역도 있고, 서대문역도 있는데 북대문역은 왜 없는지 아시오? ‘산 위’에 있기 때문이오. 그래서 기운이 가장 많이 남아있을 때 코스 첫 장소로 북대문으로 가게 되올시다.

북대문의 사정을 들어보면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했던 조선시대 유교사상이 어떻게 여성을 대했는지 알 수 있소. 북대문의 이름은 ‘숙정문’이오. 

숙정문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땅의 기운을 해친다며 오랫동안 닫아놓았소. 땅의 기운을 해친다는 그 기운은 ‘음의 기운’이오. 음양의 기운에서 음(淫)은 ‘여성’을 뜻하는데 한자부터 ‘음란할 음’자를 쓴다오. 북쪽 숙정문을 열어두면 ‘조신해야 할’ 아녀자들의 기가 세지고 ‘죄없는’ 남성들을 유혹에 빠뜨릴 수 있다 하여, 평소에 닫아두었던 것. 

실제로 숙정문을 나가면 뽕나무 밭이 많았는데 뽕잎이 무성해 뽕나무밭에서 성폭행과 밀애가 흔했다고 하오. “사내 못난 것이 북문에서 호강받는다”는 속담이 나돌 정도였으니 말이오.

이처럼 평소엔 여성들의 기운을 눌러야 한다며 숙정문을 닫아놓고선 또 필요할 땐 적극적으로 찾게 되는데 농업사회였던 조선에서 ‘가뭄’은 치명적이었소. 이에 비가 필요하다면 기우제를 지냈는데 ‘음의 기운=물의 기운’에 숙정문을 활짝 열어놓았다지요.

오랫동안 닫혀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폐허로 변한 숙정문은 박정희가 서울성곽복원계획 세우면서 복원공사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소. 숙정문은 산 속에 있기 때문에 다른 대문들이 도로에 치여 양쪽 성벽을 잃은 것과는 달리 사대문 중 유일하게 양쪽 성벽과 맞닿아있는데, 참 다행이다 싶소.

흥인지문

   흥인지문

동대문은 많이 ‘얻어맞을까봐’ 만들어 놓은 대문이오. 임금님이 계시던 경복궁처럼 중요한 국가시설들이 몰려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다 보니 성문 출입도 엄격했고 항상 군사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소.

그러다 조선 후기 들어 동대문 인근에 큰 시장이 생겨났는데 남대문시장과 더불어 한양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로 컸던 동대문시장이었소. 

조선 말 국운이 쇠하면서 동대문시장에도 위기가 왔소. 1876년 중국, 일본을 비롯한 외국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면서 동대문시장은 외국상인들에 의해 위협을 받았소. 

특히 일본인들이 다른 시장에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동대문시장 경영에까지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선상인들이 ‘광장주식회사’를 만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순수 조선인의 자본으로 동대문시장의 기운을 지킬 수 있게 되었던 것이오.

숭례문
 
    숭례문

‘국보 1호’로 다들 잘 알 거라 생각하오. 근데 왜 숭례문이 국보 1호인 줄 아시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숭례문, 너가 1호다’해서 지금까지도 1호로 정해진 것이외다.

조선 말기 외국 문물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던 고종은 당시 한양에 근대화의 일환으로 전차가 지나다니는 노선을 만들어야 겠다며 숭례문 주변 성곽을 헐었소. 전차와 사람과 소달구지 모두 지나가기엔 대문이 너무 좁아 아예 성벽을 허물자는 것이었소.

고종이 성벽을 허물 때 일제는 숭례문을 보물 1호로 지정하게 되오. 조선총독부의 관점에선 ‘조선’은 나라가 아니므로 ‘국보’가 아닌 ‘보물’로 조선 땅의 문화재를 관리한 것이오. 

숭례문을 1호로 정한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군인 가토 기요마사가 한양에 들어올 때 처음으로 지나간 문이기 때문이오.

이후에 이런 배경 때문에 ‘국보 1호의 자격이 없다’는 비판에 꾸준히 시달려온 숭례문은 결국 2008년 방화범에 의해 전소됐소. 이렇게 여러 수난에도 숭례문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서 여전히 한양 땅을 지키고 있는 것이외다.

돈의문 터

   돈의문

서대문역은 있는데 서대문은 안 보이는 이유, 바로 없어졌기 때문이오. 허망하지 않소? 서대문인 ‘돈의문’은 사대문 중 가장 슬픈 이야기를 갖고 있소. 말 그대로 이제 죽어서 없으니깐 말이오. 

1915년 일제가 도시 계획을 위해 도로확장을 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서대문 성문을 헐어 버렸소. 그리고 그 돌을 일제가 팔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대문을 지을 때 쓰였던 돌은 크고 단단한데다 성을 짓기 위해 이미 잘 다듬어져있는 크기였기 때문에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근대화에 앞장섰던 일제가 서대문 돌을 훌륭한 건축자재로 생각했던 것이오.

이에 지금 서대문이 있던 자리엔 터만 남아있오. 사대문 중 유일하게 복원이 안된 대문으로 남을 것이오.

   돌아보니

정말이지 편하오. 숙정문을 제외하면 대중교통에 관련 역과 정류장이 있어 뚜벅이들을 위한 코스이외다. 교카 꼭 준비하시게나.

   대문로드와함께라면

칙칙했던 도시가 새롭게 보일 것이오. 앞으로 종로구 인근을 드나들 때면 ‘사대문 안 한양으로 들어가는구나’ 하실게요. 그럼 즐기시오!

☞ 당일치기 '대문로드' 어떻게 하나요

* 준비물: 신분증, 편한 운동화
10:00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집합→1111, 2112번 버스(15분 가량 소요)→서울다원학교 하차→숙정문안내소까지 도보 이동
10:40 숙정문안내소 도착→숙정문
11:00 숙정문→자하문 도성 걷기
12:30 자하문 앞 ‘자하손만두’에서 점심
13:30 이동(7212번 버스)→동대문역사문화공원
14:00 흥인지문 도착→동대문성곽공원
14:30 이동(152번 버스)
15:00 숭례문 도착
15:30 이동(7021버스)
16:00 돈의문터 도착
17:00 해산


/korean.gu@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