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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은·이윤택…예술특수성이 괴물키웠다
금기·이탈을 성적으로 잘못 해석…타자에 대한 배려·여성에 대한 존중 무너뜨려

최영미 시인의 ‘괴물 En선생’ 폭로로 시작된 예술계 성추행 파문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성추문에 휩싸인 고은 시인은 30년전 일이라고 밝혔지만 불과 10년전에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성추행을 한 증언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40대 A문인은 고 시인이 지방대 초청 강연회 후 가진 뒤풀이에서 옆에 앉은 20대 여성 대학원생의 신체 부위를 만졌으며, 노래를 부르다 바지를 내리고 신체 주요 부위까지 노출했다고 증언했다. 고 시인이 출판사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또 다른 증언도 나왔다. 연극계 거장들의 낱낱이 드러난 성추행, 성폭력의 실태는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그 중심에 선 이윤택 연출가의 추태는 일반의 상식을 넘어선 상태다. 이에 피해자들을 대신해 예술인들이 단체를 결성, 민·형사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자고 나면 일어나는 성추행, 성폭력 사건의 리스트는 배우 조민기, 조재현, 한명구, 최일화, 연출가 오태석, 김석만, 시사만화가 박재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묵인돼온 뿌리깊은 예술계 성폭력의 본질은 간단치 않다.

일반 사회의 성범죄와 달리 예술의 속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탈 혹은 금기를 깨는 일은 예술과 문학의 본질로 인식된다.

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는 이와 관련, “비인간성이나 부조리한 구조를 깨는 게 금기에 대한 도전이고, 조직 혹은 제도가 갖는 경직성에 대한 이탈을 시도하는 게 예술의 본질인데, 이런 금기, 이탈, 자유분방함이 성적으로 해석되고 뒷받침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의식이 예술가다운 면모로 잘못 자리잡으면서 예술인들이 가져야 하는 윤리, 타인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여성에 대한 존중을 무너트린 것이란 지적이다. 이와 함께 남성중심사회 분위기는 이를 인정하고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다. 그동안 여성들은 조직과 예술 현장의 주변부에 머물면서 성추행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이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피해자이면서 2,3차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상대방의 범행을 참고 견디는 식으로 내재화하는 사이, 이들은 더욱 권력화됐다는게 예술계 내부의 지적이다. 도제식 시스템과 권력화된 예술, 폐쇄적인 환경도 예술계 괴물을 키운 토양이다.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우리사회 성폭력을 해결할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26일 한국여성단체연합가 주최한 긴급 토론회에서도 제기됐다.

신희주 영화감독은 “이번에 알려진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들이 커다란 문화권력을 수십 년간 행사해온 유명인이고, 집단적 묵인과 방조, 협력이 연쇄적 성범죄를 가능하게 했으므로 수사기관과 별개로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며 “조사결과를 기반으로 정책과 제도의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와 관련해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 고발 내용이 사실이라면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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