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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달픈 직장생활①]끊이지 않는 직장 내 괴롭힘…“그냥 참고 견딜 뿐”
-10명 중 7명, “직장 내 괴롭힘 당해봤다”…대부분 상급자

-수직적 업무구조ㆍ유명무실 상담창구…“제도적 개입 필요”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1. 한 급식업체에서 근무하는 A 씨는 상사와 가진 술자리에서 업무 이야기를 나누다 뜬금없이 소주병으로 머리를 맞았다. 주먹까지 강타하는 상사를 피해 A 씨가 도망가자 상사는 오히려 쫓아와 구타를 이어갔다. 폭행의 이유는 간단했다. 상사가 말을 하는데 말을 끊는다는 이유였다. 이후 A 씨가 회사에 폭행 사실을 알렸지만 회사 사장은 오히려 “회사 생활을 못한다”며 상사의 폭행을 두둔했고, A 씨에게 경위서까지 쓰도록 했다.

#2. 방송작가 B 씨는 외주업체 PD와 영상 편집과 관련해 논의를 하다 의견이 충돌했다. B 씨가 편집 방향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자 PD는 12시간 내내 쉬지 않고 작가에게 ‘훈계’를 했다. 반나절 동안 잡혀있던 B 씨는 화장실조차 가지 못했다. 평소 업계가 좁은 것을 알고 있던 B 씨는 그저 조용히 지나갈 수 밖에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에 대한 직장의 대처는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만 20~63세 성인 남녀 임금근로자 1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3.3%가 최근 1년 동안 최소 1번 이상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피해 빈도는 46.5%가 ‘월 1회 이상’, 25.2%가 ‘주 1회 이상’, 12%는 ‘거의 매일’이라고 답했다.

괴롭힘 유형으로는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부당하게 낮게 평가하는 경우(43.9%)가 가장 많았고,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 유독 힘들거나 과도한 업무를 주는 경우(37.6%)나 업무 시간이 아닌 때에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37.1%)도 많았다.

괴롭힘은 행위자로는 임원이나 경영진을 제외한 상급자가 42%로 가장 많았고 임원이나 경영진도 36.6%에 달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직장 내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대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60.3%는 “특별히 대처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대처해도 개선되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답변이 43.8%로 가장 많았고 “대처했다가 직장 내 관계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가 29.3%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괴롭힘 행위자에게 문제를 제기했다”거나 “공식적인 조치를 요청했다“는 답변은 각각 26.4%, 12%에 불과했다.

피해자가 괴롬힘에 대처하더라도 유의미한 변화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 변화가 없었다”는 경우가 53.9%로 가장 많았고, 개인적인 사과로 이어진 경우는 39.3%로 조사됐다. 공식적인 사과는 8.9%, 가해자의 징계나 근무지 이동은 8.4%로 매우 낮았다. 반면 대처 이후 피해자가 근무지 이동을 겪은 비율은 81.3%에 달했다.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상담할 수 있는 창구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상담 및 고충 처리 담당자나 창구가 있냐는 질문에 “없다”는 답변이 52.9%로 가장 많았고 “있다”는 21.2%에 불과했다. 직장 내 괴롭힘 정책이나 절차도 없는 곳이 46.5%로 조사됐고 있다는 답변은 14.8%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수직적인 업무 구조와 업무고충처리기구의 미약한 역할이 직장 내 괴롭힘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윤슬노동법률사무소의 주형민 노무사는 “직장 내 업무고충처리기구가 유명무실해 괴롭힘 과정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해고에 이르러서야 법적 대응하는 피해자가 많다. 게다가 수직적인 업무구조가 피해자의 2차 피해까지 양산하고 있다”며 “괴롭힘이 심화되기 전에 제도적인 개입을 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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