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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여야 ‘네 탓’ 공방, 부메랑되어 돌아온다
‘내 탓이오 내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한때 카톨릭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지속되지 못하고 조용히 관심에서 멀어졌다. 종교적 관점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고백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내 탓이오’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최근 충북 제천 화재에 이어 또 다시 밀양에 화마가 들이치면서 수십명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도시 전체가 장례 분위기에 빠져 주말 동안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고, 여야 당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들도 사고현장과 분향소를 찾았다.

그러나 국민적 애도 속에서 정치권은 사고 책임을 놓고 ‘네 탓’ 공방에 빠졌다. 특히 여당과 제1야당 대표가 서로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홍 대표는 사고 당일 저녁 긴급대책회의에서 “지난 8개월 동안 이 정부는 재난안전 대비책을 전혀 갖추지 않았다”면서 “세월호 해난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집권한 이 정부야말로 안전에 대해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의 사과와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추 대표는 “직전 이곳 행정의 최고 책임자가 누구였는지도 한 번 봐야 할 것”이라면서 경남도지사를 지낸 홍 대표에 책임을 물었다.

정치권의 책임론 공방 속에서 정작 국회에서 소방안전 관련 법안 정비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앞서 20대 국회 초반부터 최근까지 국회에는 다양한 소방안전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다. 소방차 등 긴급자동차의 통행을 방해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곳을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나 일정 규모 이상 공동주택에 소방차전용 주차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 등이다. 그러나 제천 화재 이전까지 해당 법안에 대한 검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제천 화재 참사 이후에도 최근 약 한 달 새 소방안전과 관련된 개정안은 추가로 13건이나 발의됐다. 소방차의 통행을 위해 주정차 차량을 강제 처분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나 소방활동 중 발생한 재산상 손해배상 책임을 해당 소방공무원에게 묻지 못하도록 한 내용 등이 포함됐다. 제천 화재 당시 조기 진압을 방해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들로 지적된 내용이다.

이 역시 법안 최종 확정까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야 한다. 여야 모두 소방안전 관련 법안 개정 필요성에 동의하는 만큼 2월 임시국회에서 쉽게 처리될 가능성도 있지만 6ㆍ13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 간 복잡한 상황에 발목을 잡히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30일부터 2월 임시국회가 본격 가동되지만 여야가 개헌과 정치보복 논란 등 쟁점으로 대립할 경우 국회가 공전돼 소방안전 법안 처리까지 영향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 마당에 상대 당 헐뜯기에 나선 정치인들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답답할 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부끄러운 정략적 언쟁을 즉각 중단하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집중해야 한다. 연이은 대형 참사로 국민적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벌이는 색깔논쟁이나 책임 공방은 국민의 실망만 키울 뿐이다. 그럴 듯한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책임 소재를 따지기 보다는 국민의 밝은 눈과 귀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참사 현장을 가장 먼저 찾은 바른정당의 유승민 대표는 합동분향소에 조문한 뒤 “잇따른 화재 참사는 정치권 모두의 책임이다. 여야가 정치적 싸움의 대상으로 여겨선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네 탓’ 대신에 ‘내 탓’이라며 사태 수습과 관련 법안 정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정치 현실을 외면한 요구일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을 때 그 결과가 고스란히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치권이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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