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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주차요금 비싸다” 돈던지는 차주도…노상 주차관리원의 눈물
-길거리 식사는 기본…온종일 미납자들과 씨름
-시급 5500원…“몇 천원 받으려 집에 못갈 땐 서글퍼”
- 비오는 날 우비 입고 하루 12시간 돌아다녀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지난 3일 금요일 오후 7시 경기도 고양시 한 유흥가 골목. 길거리에 주차하는 차를 자전거를 타고 쫓는 이가 있었다. 멀리서도 반짝이는 자동차 빛이 보이면, 땀나게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 주인은 4년차 노상 주차관리요원 이모(75)씨다.

창문을 열고 30대쯤 보이는 자동차 주인이 주차를 하며 “잠깐 식사만 하고 올 건데 얼마예요?”라고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1시간에 900원이요. 사장님 꼭 제시간에 나오셔야 해요.” 이 씨는 숨을 몰아 쉬며 답했다. 

[사진=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한 유흥가 골목에서 일하고 있는 노상 주차관리원 이모(75)씨의 모습]

창문 너머로 5000원을 받고서 그는 허리가방 안을 뒤적이며 잔돈을 찾았다. 바람이 불어오자 가방 안에 지폐들이 날아갈 듯 펄럭였다. 다급해진 그는 장갑을 벗고 1000원짜리를 골라냈다. 잔돈을 챙겨 차 주인에게 건네자마자 “빵빵”하며 건너편 카페 근처에서 경적소리가 울렸다. 그를 찾는 소리다. 이 씨는 급하게 “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라고 외친 뒤, 자전거도 팽개치고 달려갔다.

음식점, 술집, 카페 등이 즐비한 번화가 앞 약 500m노상은 그의 일터다.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이곳에 주차하는 사람에게 요금을 책정하고 걷는 일을 한다.

요금을 내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사람들과 씨름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10명 중 2명은 잠시 화장실만 다녀오겠다고 한 뒤 몇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아무리 사람들에게 “시간 맞춰 오셔야 한다”고 몇 번을 당부해도 소용이 없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해도 안 나타나는 사람이 많아요. 하염없이 기다릴 때가 가장 답답하죠.”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에도 주차차량 하나라도 놓칠까 계속해서 주위를 살폈다. 저녁은 드셨냐고 물었더니 “저녁?”이라고 반문한 뒤 주차하는 차량으로 또 달려갔다. 

[사진=금요일 밤은 주차관리원들에게 가장 바쁜 날이다. 급하기 자전거를 세우고 요금을 정산하러 가는 이 씨]

창문 너머로 돈을 던지거나 술 취해 욕을 하는 사람도 많다. 주차 요금이 비싸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셀 수 없다. 그는 “다 감수해야지 어쩌겠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요금을 안내고 가버린 사람들이다. 그는 며칠 전에도 미수금 5000원을 받기 위해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5000원은 그의 시급과 맞먹는 돈이다. 1시간에 5500원. 그는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돈을 받는다. “몇 천원을 걷겠다고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면 비참하죠. 요즘 같은 추운 날에는 더더욱….”

굳이 몇 천원을 더 받으려고 늦게까지 일하는 이유를 물었다. 수금 가방은 그의 생계였다. “퇴근 할 때 수금가방을 반납하고 가요. 수금한 돈을 갖고 회사에서 고과 점수를 매기는데, 점수가 낮으면 그만 둬야 해요. 일흔의 노인네를 어디서 써주겠소. 이렇게 일하는 것도 감사하지.”

이 씨는 고양시 시설공단이 노상 주차관리를 위해 계약한 민간 외주업체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소속해 있다. 10시간이 근무시간이지만 보통 2시간을 더 일한다. 그래서 받는 돈은 5만5000원. 임금은 박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60~70대 노인들에게는 그래도 감사하다. 4대보험, 연장 근무 수당은 ‘감히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업체에서는 한 달에 2~3명씩 고과 점수가 낮은 미성과자들이 잘린다. 그는 “언제든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며 “잘리면 큰 일이라 한 푼이라도 악착같이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시내 노상 주차관리원들이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12시간 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을 간접 고용한 고양시 시설 관리공단 측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양시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민간업체에 위탁한 일이라 그쪽에 문의해보라”는 말뿐이었다. 이 씨가 속한 업체관계자는 “최저임금에 조금 못 미치는 돈을 주는 건 맞지만, 수금을 압박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진=도로 한복판에 놓여있는 간이의자. 이 씨의 유일한 쉼터다]

오후 8시 40분. 그가 처음으로 자전거에 내려 간이 접이 의자에 앉았다. 유일한 쉼터였다. “앉을 시간도 없는데 저녁은 사치”라고 그는 말했다. “밥 먹는데 보통 15분을 못 넘겨요. 밥 먹는 동안 회사동료가 교대해주는데 길게 먹으면 미안하죠. 점심 때도 주차차량 밀려오는데….” 그래서 그는 때론 길바닥에서 먹는 도시락이 더 맘이 편하다고 했다.

그는 바람에 벗겨진 후드 모자를 재무장한 뒤 옆에 놓인 자전거 바퀴와 안장을 살폈다. 안장에 싸여있던 반쯤 찢어진 하얀색 비닐봉지가 눈에 띄었다. “비 오는 날 안장을 젖지 말라고 씌운 거지” 그가 멋쩍게 웃었다.

비 오는 날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야 하는 노상 주차관리원들에게 가장 괴로운 날이다. 우산을 들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우비를 입어도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온몸이 다 젖는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올해 여름엔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면서 자전거를 몬 적도 많았다. 이제는 겨울 비 걱정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간이휴게소라도 있으면 좋지 않겠냐고 묻자, 그는 “좁은 길 한가운데 휴게소가 있으면 주차하기 복잡해진다”며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주차하다가 실수라도 생기면 내 탓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5분쯤 쉬었을까. 멀리서 40대 남성이 뛰어오며 “저 쪽에 주차해놨다. 얼마냐”고 다급히 물었다. 이 씨는 벌떡 일어나 “죄송하다”며 재차 외쳤다. 약속이라도 한 듯 사방에서 “빵빵”소리가 들려왔다. 이 씨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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