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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국적자의 한숨①] 한국선 ‘외국인 권리 포기’ 서약…“저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전쟁나면 미국가겠네”…편견 속 시름
-원정출산ㆍ외국 시민 등 색안경엔 억울
-2010년 복수국적 허용…까다로운 절차
-올 8월까지 9만명…6년만에 6배 ‘급증’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1. 미국과 한국의 복수 국적을 가진 직장인 박모(30ㆍ여) 씨는 출생지의 질문을 가장 꺼린다. 아버지의 직장 주재원 생활로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답하면 “한반도에서 전쟁 나도 걱정 없겠네. 미국이 준비해주는 비행기타고 도망갈 수 있을 것 아냐”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박 씨는 “우리나라 내에서는 외국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공식적으로 했고, 그래야만 정부가 복수 국적을 허용해주는데 사람들이 그런 시선으로 쳐다보면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2. 3년차 직장인 김모(28ㆍ여) 씨도 부모님이 미국에서 유학하던 도중 태어난 복수국적자(이중국적자)다. 부모님의 학업과 연구원 생활을 마친 후에야 영구 귀국했다. 몇 년 전 바뀐 국적법 덕분에 복수 국적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된 김 씨는 자신의 출생지를 설명할 때마다 억울함을 느낀다.

김 씨는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농담 식으로 부모님이 원정출산 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며 “부모님의 유학을 하게 된 경위까지 일일히 다 설명해야 원정출산이 아닌 것을 믿어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워낙 원정출산이 워낙 많고 이에 대한 국민 여론도 나쁜데 내가 이런 취급을 받으면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복수국적을 허용하면서 복수국적자 수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부 복수국적자들이 ‘외국 시민’ 혹은 ‘원정출산’과 같은 색안경 시선에 시달리고 있다.

6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우리나라 복수국적자 수는 8만6000여 명으로 2011년 1만5000여 명에서 거의 6배 급증했다. 이 가운데 외국 출생으로 인한 선천적인 복수국적자가 3만8000여 명(44%)로 가장 많고 혼인에 다른 한국 귀화가 3만2800여명(38%) 그 뒤를 이었다.

법무부는 지난 2010년 국적법 개정안을 통해 복수 국적을 허용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외국에서 태어난 선천적인 복수국적자는 만 22세 전까지 복수국적을 신청하면 가능하다. 20세 이후 복수국적자가 된 경우엔 국적 취득 후 2년 안에 신청하면 된다. 이전까지는 선천적인 복수국적자가 남성일 경우 만 18세, 여성일 경우 만 22세 전까지만 복수 국적이 허용됐고 이후에는 국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선천적인 외국국적자 모두에게 복수국적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전형적이고 명백한 원정출산자는 복수국적 대상에서 철저히 제외된다. 산모가 뚜렷한 이유없이 출국해 출산한 원정출산자의 경우 한국국적을 선택하면 무조건 외국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까다로운 심사 조건을 내걸고 있다. 원정출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청자가 외국에서 태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경위를 부모의 외국 학위증이나 회사 재직 증명서 등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한다. 또한 출생 직후 2년간 한국에 입국한 기록이 없는지 등을 출입국 기록을 통해 검증한다.

원정출산이 아님이 증명된 복수국적 신청자는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도 해야 한다. 국내에 있는 한 외국 국적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외국 국적 권리 행사를 통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는 최악의 경우에도 외국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한 이민 전문 변호사는 “복수국적제가 허용된 이후 정부가 철저한 심사 제도로 원정출산자를 복수국적 대상에서 제외하고 국내에선 한국인으로서의 권리만 행사하도록 제한하고 있다”며 “국익과 인권을 고려해서 복수국적을 허용한 법 개정의 취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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