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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400명 투옥됐던 ‘광주교도소’…5ㆍ18 암매장 흔적 찾기
[헤럴드경제]5ㆍ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인 옛 광주교도소에서 문화재 발굴방식으로 암매장 흔적 찾기를 시작한다.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에 따르면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 재소자 농장 터에서 콘크리트와 잡초등 각종 장애물을 제거했으며, 6일부터 고고학 분야 전문가로 꾸려진 발굴사업단을 투입해 문화재 출토 방식으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흔적 찾기를 시작한다.

5ㆍ18 행방불명자 암매장지로 추정되는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빨간선 표시 안쪽)에 5일 콘크리트, 잡초 등 장애물 제거 작업이 끝나 있다.[사진=연합뉴스]

발굴단은 유적지 조사에서 쓰이는 트렌치(Trenchㆍ시굴 조사 구덩이)를 곳곳에 설치할 예정이다. 트렌치는 농장 터 땅 밑에 유해가 존재하는지, 과거 몇 차례나 흙을 파내고 다시 메웠는지 등 정교한 지질 정보를 제공한다.

흙을 건드려 구덩이를 파낸 적 있는지, 중장비를 동원했는지 손으로 작업했는지도 알 수 있으며, 땅속에 있는 물체가 시신인지 아닌지, 시신이 있었는데 매장 후 다시 파갔는지 등 땅속 변동 이력도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다.

광주교도소는 상무대 영창에 갇혔던 시민 4천여 명 중 400여 명이 투옥됐던 곳으로, 광주시는 이곳을 5ㆍ18사적지 22호로 지정했다. 특히 1980년 5ㆍ18 직후 계엄군에 의해 암매장된 시민들의 시신이 발굴됐던 곳 중 한 곳이라 재소자와 이곳에 있던 군인들의 증언이 더 큰 신빙성을 얻고 있다.

전남대학교에 배치됐던 3공수여단은 1980년 5월 21일 오후 4시께 병력을 퇴각해 호남고속도로와 광주-담양 도로로 나가는 광주의 북쪽 관문에 자리 잡은 광주교도소로 주둔지를 옮겼다.

군 기록에 따르면 당시 트럭 2대로 전남대에 억류한 시민들을 함께 끌고 갔다. 생존자들과 3공수 소속 김모 소령은 1995년 검찰조사에서 “군이 트럭에 최루탄에 사용되는 CS분말가스를 터뜨려 질식하고 2∼3명이 밟혀서 사망했다. 차에 사람들을 욱여넣고 밀려나오면 대검으로 찔렀다”고 진술했다.

보안대 자료에는 옛 교도소에서 억류당한 시민 28명이 숨졌다고 돼 있으나 5ㆍ18 직후 임시매장된 형태로 발견된 시신은 교도소 관사 뒤 8구, 교도소 앞 야산 3구 등 11구뿐이었다.

당시 교도소 주변에서 광주 소식을 외곽으로 알리려던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계엄군의 발포로 아이를 태우고 광주를 떠나려던 비무장 시민과 마을 주민들이 죽거나 다쳤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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